• 7장 식민지(植民地) ④  

     이완용(李完用)은 작년인 1909년 12월에 명동성당 앞에서 이재명(李在明)의 칼을 맞고 오른쪽 폐를 찔렸지만 목숨은 건졌다.

    이제 올해 1910년 8월 29일, 이완용은 다시 내각총리대신으로 한일합방에 서명하고 조선 땅을 일본제국에 헌납했다. 이완용이 을사5적 중 하나로 마지막 한일합방에도 주역이 되었으니 최악의 매국노인 것은 분명하다.

    그 이완용이 YMCA 건물로 찾아온 것은 11월 초, 내가 귀국한지 한달 쯤 되었을 때였다.
    YMCA 강당에서 강의를 마친 내가 복도로 나왔을 때 질레트가 서둘러 다가왔다. 당황한 표정이다.

    「리, 중추원 부의장이 왔소.」
    내 앞에 선 질레트가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지금 응접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의장이라니? 누굽니까?」

    내가 묻자 질레트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백작이요.」

    질레트의 조선말이 어색했지만 나는 그때서야 이완용이 온 것을 알았다.
    이완용은 한일합방의 공으로 중추원 부의장이 되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백작(伯爵) 작위와 엄청난 은사금까지 받았다.

    응접실로 들어선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이완용을 보았다. 이완용은 두 사내와 함께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얼굴을 펴고 웃는다.
    「이공, 오랜만이오.」

    나는 잠자코 목례만 했다. 그러나 굳어진 얼굴은 숨기지 못했다.
    이완용은 1858년  생이니 나보다 17년이나 연상이다. 내가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영어 연설을 할 때도 참석했었고 정동구락부에서 만난 적도 있다.

    이완용이 옆쪽에 앉은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를 소개했다.
    「이분은 경무총감부의 이구치 대좌시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구치의 일본어를 옆에 앉은 통역이 조선어로 바꿨다.

    앞쪽 자리에 앉은 내가 이완용에게 물었다.
    「각하께서 웬일이십니까?」
    「이공의 미국 박사 학위 받으신 것을 축하도 할 겸 이구치 대좌도 소개시켜 드리려고 온 것이오.」
    이완용의 말을 통역이 낮게 이구치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때 이구치가 나에게 말했다.
    「전에 이공께서 여러 신문에 기고하신 것을 대부분 읽었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구치가 말을 이었고 통역은 열심히 전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릅니다. 앞으로 반일적 기사를 신문에 기고하거나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도 금지 됩니다.」

    그리고는 이구치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만 위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만일 그것을 어길 경우에는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협박이다.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이구치가 혼자서 왔다면 이렇게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완용이 데리고 왔다는 것이 내 절제력을 깨뜨렸다.

    「매국노.」
    내가 조선어로 낮게 말한 순간 이완용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그때 통역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구치에게 말했다. 이구치도 눈을 치켜뜨고는 나와 이완용을 번갈아 보았다.

    그때 이완용이 말했다.
    「일본제국이 천년만년 조선을 지배하고 동화시킨다면 나는 대일본제국의 영웅이 될 것이다.」

    내 시선을 받은 이완용이 어깨를 펴더니 온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박사, 아느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지금 나는 승자의 편에 서있다.」

    나는 어금니를 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식민지 백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