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②  

     「어, 장하다.」
    내 절을 받은 아버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를 들었더니 아버지는 이미 외면한 채 옆모습만 보이고 있다.

    「아버님,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두 손을 방바닥에 짚은 채로 그렇게 물었더니 아버지가 대답했다.
    「오냐, 괜찮다.」
    「소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신문으로도 보도 되었고 인편을 통해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이 예의다.

    내가 아버지 옆모습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조지 워싱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버님.」
    「장하다.」
    「재작년에 전 미국교포 대표자회의에서 애국동지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올해에는 대한인국민회에 가입했습니다.」
    「그러냐.」
    「올해 초에 제가 한성감옥서에서 써놓았던 「독립정신」을 미국에서 출간시켰습니다. 아버님.」
    「잘했구나.」
    「태산이 묘는 묘비도 좋고 명당입니다. 제가 아버님 글을 태산이한테 자주 읽어주었습니다. 아버님.」

    아버지 대답이 없었으므로 나는 시선을 내렸다.

    집안은 조용하다. 건넌방의 아내 또한 기침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는데 이제는 내가 머리를 숙이고 있다.

    「난세(亂世)다. 조선 왕조와 함께 내 대(代)도 끊기는가 보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삭막했다. 마른 장작처럼 딱딱했지만 그것이 더 내 가슴을 쳤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천명(天命)이니 어찌하겠느냐? 네가 태산의 남은 명을 이어가려므나.」
    「아버님, 제 불찰이올시다.」
    「이제 너를 다시 보았으니 난 되었다.」

    그때 머리를 든 나와 아버지의 시선이 부딪쳤다.
    아버지의 두 눈이 등잔불을 받아 번쩍이고 있다.

    6년만에 뵈온 아버지는 많이 여위었고 늙으셨다.
    이때 아버지의 나이는 74세였으니 당시로써는 장수하신 셈이다.

    아버지 나이 38세, 어머니 나이 42세때에 나는 6대독자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 7대독자가 되는 손주를 미국 땅에 묻었으니 아버지의 가슴은 피멍이 들었으리라.

    「아버님, 용서해 주십시오.」
    마침내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울음은 참았다. 그것은 아버지 가슴이 더 아플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가 보거라.」
    다시 외면한 아버지가 말한 것은 이제는 건넌방으로 가보라는 뜻이었다.

    얼굴을 닦은 내가 방으로 들어섰더니 안쪽 벽 쪽에 앉아있던 아내가 머리를 들었다.
    밤 10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사방은 조용하다.

    「미안하오.」  
    자리에 앉으면서 내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한테도 죄를 지었소.」

    시선을 들었더니 아내는 이를 악문 채 방바닥을 내려다보는 중이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다시 굳어지는 것 같았다. 자식 잃은 어미의 가슴은 오죽하겠는가?
    내 몇마디 사과로 해소가 될 일인가?

    그 순간에는 식민지 백성이 된 아픔도, 프린스턴 박사가 된 성취도 다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나도 몸을 굳힌 채 방바닥만 보았고 방안에는 꽤 오랫동안 정적이 덮여졌다.   

    그렇게 6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첫날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의 암담함이 지금도 가슴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