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①  

     식민지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나라 또는 영토로써 속국(屬國)이나 속령(屬領)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가 5년 11개월만에 발을 딛은 남대문. 내 조국의 땅은 일본 식민지로서 일본령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나리.」
    역 앞 광장에 나왔을 때 어둠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석(奇石)이다. 기석의 뒤에 숨은 듯 선 사내는 바로 재석이었다.
    「오오.」
    저도 모르게 내 입에서 신음같은 탄성이 터졌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전에 모스크바에서 기석에게 전보를 치기는 했다. 그러나 열차가 연착되어 이틀이나 늦었던 것이다.

    다가온 기석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더니 내 가방을 받아 쥐었다. 재석도 잠자코 가방 하나를 쥐었는데 등빛에 눈이 반짝이고 있다. 기석이 감회어린 표정을 짓고 묻는다.

    「나리, 이틀 전부터 이 시간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기석이 미리 준비한 듯 인사를 늘어놓았고 재석이 우물거리며 따랐다.

    나는 역 광장의 찬 공기를 들이키며 서글프게 웃었다. 이제 기석은 미국 공사관이 없어진 터라 사업가가 되어있다. 이시다 주우로가 뒤를 받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리, 댁으로 가시지요?」
    짐꾼의 지게에 짐을 실으면서 재석이 낮게 물었으므로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재석, 그대는 어찌 지내는가?」
    「기석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재석이 말했을 때 기석이 투덜거렸다.
    「이놈아, 형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단 말이냐? 고얀놈 같으니.」

    기석이 재석에게 알려줘서 역에 같이 나온 것이다.
    나는 기석에게만 연락을 해서 식구들 외의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의 심정은 꼭 초상이 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셋은 나란히 서서 어둠에 덮인 길을 걷는다. 뒤에는 지게에 내 짐을 실은 짐꾼 두명이 따르고 있다.

    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의병 때문에 조선 땅이 전쟁터 같았지만 지금은 거의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만 했고 기석이 목소리를 낮췄다.

    「작년 말에 이등박문이가 하얼빈에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저도 닷새 동안이나 밤마다 만세를 불렀지요. 안중근 의사 만세를 말입니다.」
    나는 길게 숨만 뱉았다.

    안중근은 올해 3월 6일 처형당한 것이다. 7개월 전이다.
    29세로 순국한 안중근은 영웅이다. 조선이 독립을 찾고 난 후에 영원히 영웅으로 기억되리라.

    그때 왼쪽에서 따르던 재석이 말했다.
    「나리, 며칠 전부터 댁 앞에서 일본 형사들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겠어. 그대는 나중에 다시 만나.」
    내가 부드럽게 말했더니 재석이 손등으로 눈을 씻었다.
    「나리, 댁까지 뫼시지도 못하고 분합니다.」
    「할 이야기도 있으니 내일 다시 만나세.」

    걸음을 멈춘 내가 재석을 보았다. 재석은 여러 곳에서 의병으로 활약한 바람에 일본 군경으로부터 수배중인 인물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머리를 굽혀보인 재석이 몸을 돌렸다.

    「많이 죽었습니다.」
    다시 발을 떼었을 때 기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의병들은 간도나 연해주 땅으로 옮겨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무익 소식을 들었나?」
    「간도 땅에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말을 그친 기석이 길게 숨을 뱉는다.
    「일년이 넘도록 연락이 오지 않는군요. 전에는 두달에 한번은 인편으로 소식이 왔었는데요.」

    기석과 박무익은 친구가 되어있었다. 하나는 일본인 통역관 출신이었고 또 하나는 의병장이었지만 서로 돕고 살아 온 것이다.

    나도 저절로 터진 긴 숨을 뱉고나서 밤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맑아서 별이 떨어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