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⑬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개최된 전 미국지역 동포 대표자 회의에는 각지에서 모인 동포 대표가 40여인이나 참석했다. 회의는 그레이스(Grace) 감리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1908년 7월 11일이었다.

    개최 첫날 각 지역 대표는 애국동지회 회장과 두명의 서기를 선출했다. 나는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선출되었는데 과분한 명예였다. 박용만의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기 두명은 박용만이 국문서기, 윤병구가 영문서기로 선출되었으니 둘 다 나에게 동생같은 사람들이어서 이런 기연(奇緣)도 없다.

    당시의 내 나이 34세때였다. 하버드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받는 만학도 신분으로 동포들로부터 분수에 넘치는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날 나는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청중에는 미국시민, 기자 그리고 러시아와 영국 기자까지 와 있었다.

    「동포 여러분, 우리는 자력으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해야 합니다. 세계열강은 각각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그것이 곧 정의입니다. 자국의 재산과 인명을 희생시켜 타국을 돕는 국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힘을 길러 기어코 빼앗긴 주권을 우리 손으로 되찾아야 합니다.」

    그때 우레같은 박수가 일어났고 박용만은 벌떡 일어나 함성까지 외쳤다.

    고종은 작년인 1907년에 평화회담이 열린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했지만 일본의 방해와 국제 사회의 냉대를 받아 밀사 이준이 분사하는 비통한 일이 일어났다.
    포츠머스 조약, 영일동맹, 가쓰라-태프트 조약 등으로 이미 대한제국은 일본령임을 세계열강이 승인해 준 상황이 아닌가? 이제 대한제국에는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지배를 받는 중이며 강제 퇴위 당할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열강은 이용가치가 있는 국가만 돕습니다. 그것이 정의에 어긋나며 야속하다고 투정하는 것은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지의 동포가 뭉쳐 한 목소리를 내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강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선 땅에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연사로 나서서 외치던 내용도 이와 비슷했던 것이다. 한성감옥소에서 5년 7개월 동안 만났던 애국 동지들이 처형당하기 전에 말했던 내용도 이것이다.

    작년에 죽은 태산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역만리 미국 땅, 빼앗긴 조국을 두고 여기 백여명의 동포 앞에서 나는 또 같은 말을 외치고 있다.

    아, 그날은 언제가 될 것인가?

    그때 내가 눈물을 닦고 말했다.
    「여러분, 우리 조국 동포를 위하여 아리랑을 부릅시다.」

    그리고는 내가 아리랑을 선창했다. 아리랑을 모르는 조선 동포가 있겠는가? 그레이스 교회당 안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힘차게 따라 부르던 동포들의 목소리에 점점 울음이 섞여지더니 곧 이곳저곳에서 통곡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아리랑은 끈질긴 조선 민족의 운명처럼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듣고 있던 미국인, 기자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날의 아리랑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리랑은 서러운 조선 민중의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노래다.

    애국동지회는 동포의 결속에 크게 기여를 한 모임이었다.
    박용만은 덴버의 애국동지회 창립 후에 한일 무력투쟁에 대비한 청년 훈련학교를 설립하여 무장 투쟁 준비를 시작했다. 동포들을 분발 시키고 희망을 일으키려는 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