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⑤  

     「조선인 파벌이 오히려 일본인보다 더 적대적이며 해가 된다.」
    전부터 머릿속에 쌓여오던 그 생각이 그때부터 굳어진 것 같다.

    조선 땅에서 수구파와 개화파가 싸운 것은 나름대로 명분이 뚜렷했다. 매관매직이나 제 일신의 안위만 챙기는 무리를 제외하면 훗날 역사가 판단하도록 미룰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 미국 땅에서 8천명밖에 되지 않는 동포가 분열되는 것은 수치다.
    그것도 지역과 인연 또는 행동방식을 놓고 원수처럼 싸운다. 그것을 일본인들은 적절하게 이용했다.
    실제로 원수 사이가 된 반대 파벌의 밀고로 일본공사관원에게 꼬리를 잡힌 독립당원도 있다.

    김일국에게 답장을 써 보낸 내가 하버드로 옮긴 직후인 1907년 7월 20일,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하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물론 일본의 압력을 받고 퇴위한 것이다.

    을사늑약 이후로 고종은 서방 각국에 밀사를 파견하여 조약이 강제로 체결 되었으니 도와달라는 청원을 했다. 눈물겨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가 갈렸다.

    죽어가는 자의 몸부림이 어찌 처절하기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감상(感想)이다.
    나로서는 그것이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었다. 제 사지를 다 스스로 떼어놓고 머리만 살아서 애처롭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나 같다.

    나 또한 밀서를 들고 국무장관을 만났다.
    태프트의 추천장을 감지덕지 받아든 윤병구와 함께 루즈벨트를 만난 순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루즈벨트의 감언이설에 윤병구는 울며 소리쳤으며 나 또한 날뛰지 않았던가?

    포츠머스 강화조약 내용이 밝혀진 후부터 나는 대한제국의 멸망을 예단했다.
    제국주의 세계를 지배하는 열강들의 행태는 워싱턴에서 가장 잘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의 청원 밀사는 웃음거리일 뿐이다.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 되었답니다.」
    나에게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은 안명수, 케임브리지에서 동양인 상대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동포였다.

    30대 후반의 안명수는 1902년의 첫 이민자이다. 안명수는 하와이에서 바로 본토로 건너와 유랑을 하다가 케임브리지에 정착한지 2년이 되었다고 했다. 시간제로 일하는 곳을 찾으려고 나는 두 번째 안명수를 찾아온 것이다.

    안명수가 넓은 얼굴을 펴면서 웃었다.
    「이제 대한제국은 털 다 뽑힌 닭이 되었지. 도마 위에 묶여놓은 닭 말이요.」

    쓴웃음만 지은 내가 가만 있었더니 안명수는 말을 잇는다.
    「잘난 척 했던 황제네, 대신놈들 꼴 좋게 되었지. 민중들이야 등 따숩고 배부르면 일본놈들이 아니라 되국놈들이 조선 땅을 먹어도 상관하지 않소. 안그렇습니까?」

    가만 놔두면 좋았을 텐데 묻는 바람에 내가 대답했다.
    「그건 돼지나 닭처럼 생각 없는 민중들일 게요.」

    안명수가 눈만 크게 떴고 내가 말을 잇는다.
    「아마 제 애비가 일본놈인지 되국놈인지도 모르는 놈들이 그럴 것 같소.」
    「아니, 이보시오.」

    안명수가 말을 잇기도 전에 내가 끊었다.
    「내가 재작년에 루즈벨트를 만난 이승만이요.」

    그 순간 안명수의 얼굴이 누런 종이처럼 변하더니 입만 딱 벌어졌다. 미국 땅에 와 있는 조선인중 내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을 터이다.

    내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을 이었다.
    「이보시오. 종이 되어서 잘 먹고 잘 사시려오? 조선인이 일본의 종이 되어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