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② 

     이것이 현실이다.
    내가 작년(1905, 8) 포츠머스 강화회담의 내용을 알게 된 것은 몇 달이나 지난 후였다.
    그 내용을 읽은 나는 가슴이 내려앉으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기가 막혔기 때문인데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즈벨트에 대한 증오는 가슴에 깊게 새겨졌다.

    내가 윤병구와 함께 루즈벨트를 만났을 때는 1905년 8월 4일이다. 그리고 엿새 후인 8월 10일에 포츠머스 군항에서 러·일 강화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은 루즈벨트가 주선한 것이다.

    그런데 그 조약의 첫째항이 이것이다.
    1) 러시아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호, 감리권을 승인한다.

    나에게 일본의 침탈을 막도록 적극 협력해주겠다고 해놓고는 엿새후의 러·일 강화 회담에 중재자로 나서서 조선을 일본에게 넘겨주는 조약을 주도한 것이다.

    물론 루즈벨트에게 나같이 비공식이며 직함도 없는 유학생 신분의 사절은 놀림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루즈벨트는 제국주의의 표본같은 인물이었다. 약자는 무시했고 당연히 강자의 지배를 받아야 된다는 사고로 무장되었다.

    루즈벨트는 몇 년 전에도 일본은 당연히 대한제국을 지배해야 된다는 방언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태프트를 보내 필리핀과 대한제국을 각각 미국과 일본이 공유(共有)하자는 비밀 합의를 한 것도 나중에 밝혀졌다.

    그 루즈벨트의 한마디에 만세를 부르며 들떠 김윤정을 들볶았던 우리가 부끄럽고 비통했다. 루즈벨트는 웃었을 것이다.

    유학생 오병한이 나를 찾아왔을 때는 1907년 3월 중순쯤 되었다. 도서관에 있던 나를 불러낸 오병한이 복도에 서서 말했다.
    「형님, 일본공사관에다 유학생 신고를 하지 않으셨지요?」

    쓴웃음만 짓는 나에게 오병한이 말을 잇는다.
    「이번 주말까지 하지 않으면 여권을 말소시켜 추방당하도록 하겠답니다.」

    새 여권을 발급 받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국이 발행하는 새 신분증이다.

    그때 오병한이 바짝 다가섰다.
    「형님, 미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한 유학생이 10여명이나 됩니다. 모두 받아들일 것 같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저도 어제 망명 신청을 했습니다.」

    나는 길게 숨을 뱉았다. 오병한은 조선 땅에 숙부 한분만 계실 뿐 직계 혈육이 없어서 처신이 자유로운 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조선 땅에 남아있는 일가 친척이 피해를 볼까봐서 마음대로 행동을 못한다.

    내가 입을 열었다.
    「난 새 신분증 받지 않겠어. 그리고,」
    내가 머리를 저으며 오병한을 보았다.
    「미국 시민도 되지 않겠네. 미국 시민이 되고나서 어찌 조선 민중에게 조선인의 개혁을 외치겠나? 나는 끝까지 조선인으로 남아 있겠네.」
    「형님, 하지만,」
    하고 말을 이으려던 오병한이 입을 다물었다.

    오병한은 미국 시민이 되어서도 열심인 서재필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일본국에 협조하지도 않고 미국 시민도 되지 않겠다.
    일본 공사관에서 그렇다고 나를 추방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땐 이곳에서 다시 투쟁하리라.

    그때 오병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본 공사관의 아카마스 영사가 승진해서 조선인 담당 총책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아카마스는 퇴원한 후에 조선 독립당의 소탕 작전을 벌였는데 수십 명이 추방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독립협회도 당분간 동면 상태에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