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 Lucy 이야기 ①  

     휴지로 눈물을 닦아낸 나는 이승만의 다섯 번째 수기를 덮었다.
    밤 11시 반, 수기 제5장은 이승만의 아들 태산이 필라델피아에서 외롭게 죽은 장면으로 끝이 났다.

    그동안 김태수는 물론이고 고영훈, 고지훈으로부터 들은 이승만 이야기에다 수기까지 읽고 났더니 대한제국이 멸망하는 당시가 눈앞에 환하게 펼쳐지는 것 같다. 그러나 수기는 1906년 2월 말까지였다. 앞으로 긴 세월이 더 이어져야 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선반으로 다가가 위스키 병과 잔을 집었다.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태산의 죽는 장면이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물잔에 위스키를 채운 내가 크게 한모금을 삼키고는 소파에 앉는다.

    수기를 읽으면서 나는 닷새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매일 밤 수기 1장씩을 읽은 것이다.

    이승만의 미국시절 동지이며 독립회원인 김일국의 자손이 내게 보내 준 수기다.
    김일국의 아들 김인호가 유언으로 박무익의 후손에게 전해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무익은 내 외조모의 조부이며 내 이씨 성은 이승만과 함께 도미했던 한성감옥서의 간수장 이중건의 동생 이중혁의 성에서 땄다. 어머니 이신옥의 증조부가 이중혁이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는 친가와 외가가 모두 이승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으므로 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핸드폰을 집은 내가 발신자 번호를 보았다. 테드, 김태수다.
    어제 내가 안면도에서 자고 온 후에 김태수는 연락해오지 않았다. 그것이 김태수의 성품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남자하고 같이 보낸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내가 응답했다.
    「하이, 이 시간에 왠일이야?」
    그동안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내가 먼저 선수를 친 셈이다.

    그러자 김태수가 짧게 웃는다.
    「그렇게 쉽게 한국에 빠질 줄 몰랐는데, 내 상상을 넘어섰어.」
    「역시 뿌리는 속일 수 없나봐.」
    김태수는 나와 고영훈의 관계를 빗대는 것 같다.

    나도 웃음띤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날 내버려두면 안된다고 했지? 날 잡고 있었어야 했어.」
    「이승만 수기는 어디까지 진도가 나간 거야? 참, 지금도 수기가 오기는 해?」
    「응. 매일.」

    화제가 바뀐 것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조금 허전한 것은 김태수에게 남은 미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진도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을사보호조약을 맞는 시점까지 갔어.」
    「그렇군.」

    그리고는 김태수가 3초쯤 망설이는 것 같더니 말을 잇는다.
    「거기 혹시, 김재석이란 인물이 나오나? 이승만 주변에 말야.」

    놀란 내가 숨을 죽였을 때 테드의 헛기침 소리가 울렸다.
    「물론 없겠지. 이승만이 91세까지 산 노인네여서 만난 인간이 수만, 수십만일텐데 말야. 악수를 한 놈만 백만명은 될걸?」
    「......」
    「거기에다 말년에는 노망이 들었다는 소문도 있어. 제대로 썼을라구.」
    「있어. 김재석.」
    하고 내가 말했더니 김태수가 뚝 말을 그쳤다.

    내가 말을 이었다.
    「많이 나와. 이승만의 최측근으로 성실하고 충직한 경호원. 목숨을 걸고 이승만을 지키는 애국자로.」

    테드, 김태수는 숨을 죽이고 있다. 그래서 나도 가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