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조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은 1897년의 일이었습니다. 연호는 광무, 고종은 황제라고 불리게 되었고 외세의 압박과 농간만 아니었다면 대한제국이 대일본제국에 뒤떨어질 까닭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열강들의 각축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제국은 완전히 무너지고 조선은 일본의 영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해방을 맞이하기까지에 36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되었고 그리고 또 3년의 진통 끝에 대한민국이 탄생하였습니다. 북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를 반대하고 앉았다가 소련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이 조선 인민공화국을 수립했으니, 정통성과 합법성을 지닌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의 인민공화국은 불법정치집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6·25 때 북의 공산집단의 반란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킬 수는 있었으나, 중공군과 소련군의 농간과 우방인 미국의 우유부단한 처사 때문에 ‘실지회복’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한민국은 건재합니다.

    무너진 지 40년이 다 된 대한제국의 폐허 위에 새로 나라를 세우고 세계 여러 나라들의 승인을 받고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간 건국의 아버지는 이승만입니다. 그 시대를 살면서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지 않은 젊은이가 어디 있고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성토하지 않은 한국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그가 한 평생 독립 운동에 힘쓰던 하와이 호놀룰루로 되돌아가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객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3·15 부정을 막지 못한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는 있지만, 최인규 등이 획책한 3·15의 음모를 그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밝혀진 사실입니다. 최인규는 그 죄를 자복하고 서대문 교도소의 미루나무 그늘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최근에 이승만이 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의 명문대학 프린스턴에 ‘이승만 홀’을 만들자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속수무책입니까.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일등 공신인 이승만의 동상이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지기 전에는 박정희 기념관도 김대중 기념관도 세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왜 모릅니까. 이승만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