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성 인정' 안했는데!
    간총리 민망할 것이다

    현대의 전쟁이 무엇보다도 정보전쟁인 것은 손자의 지피지기(知彼知己) 전략 이래로 역사가 오래다. 다 아는 얘기인데, 망국 100년에 또 다시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 측이 ‘식민지배 강제성 인정’ 같은 것 하지도 않았는데, 한국 신문들이 일제히 ‘강제성 인정’했다고 크게 쓰고 나왔다. 우리가 상대 일본을 건성으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100년전 한말급이다. 한국과 잘해보려고 하는 일본 간(管直人)총리는 좀 민망할 것이다.

    러일전쟁이 나던 1904년 초에, 한국에 왔던 영국특파원 F.A.맥켄지(1869~1931)는 역사가 급의 안목이 있었다. 그는 이또(伊藤博文) 통감정치의 강압정책과 그들의 만행을 폭로했고, 치열했던 의병의 활약상을 서방세계에 기적적으로 르포하기도 했다. 그의 유명한 “조선의 비극” 속에 당시 한국 지도층들의 지피지기(知彼知己) 수준이 언급되어 있다.

    “(한국의) 상류층 사람들의 대부분, 특히 얼마만큼이라도 외국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일본의 약속을 믿었고, 또한 종래의 경험으로 미루어, 자국의 원대한 개혁의 실시는, 외국의 원조 없이는, 수행하기 어렵다고 확신하고 있어서, 이 때문에 마음속에서 일본에 기대고 있었다.” 이 관찰 시점이 ‘한일의정서’가 체결되던 1904년 2월말이니까, 일본이 보호국으로 깔고 앉기 불과 일년 반쯤 전에 불과했다. 당시 조선의 개화지식인이라 해도, 시스템의 환경에 일어나는 변화를 인지할 능력은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 둘이 아닌 조선의 지식인 모두의 문화에 치명적으로 모자랐던게 아닌가 한다.

    그 결과가 망국이었다.

    100년이 지난 오늘은 어떤가. 별로 달라진게 없슴을, 간(管) 총리 담화 오독문제가 시사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강제성 인정’을, ‘인정’했다고 하게 된데는 두가지의 연유가 있는 것 같다.

    오역의 문제

    하나는 오역으로 인한 것, 또 하나는 우리 모두가 일본을 지켜보고, 바로 알려고 들지 않고 있었슴이 드러난 일이다.

    “한국사람들 뜻에 반해 ‘행해진’(行われた)"을 '행해진'으로 하지않고 ‘이뤄진’으로 번역하여 정부는 언론에 간(管)총리 담화를 내놓았던 것이다.

    발표된 번역대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로 한다면, ‘식민지 지배’에서 ‘한국인들’의 입장은, 문맥상 그 같은 지배를 결정하는 합의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트너인 한국사람들 뜻에 반하여 ‘이뤄진’ 것이니까, ‘식민지 지배’는 강제성을 띄는 것이 된다.

    ‘이뤄진’이란 오역이 아니고, ‘행해진’이라고 바로 하여 맥락을 본다.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행해진’ 식민지 지배”로 할 경우, '한국인'의 문맥상의 입장은, ‘직접 구체적인 식민지배, 내지 통치를 당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식민지 지배 자체의 결정이 강제였다는 뜻은 절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뜻에 반하여’는 식민지배의 구체적 시책이 한국사람들 뜻과 다르다든지, 뜻과 맞지 않다든지 정도의 의미로 되는 것이다.

    강제성 여부와 관련하여 곁들여 주목할 것은, 담화문의 첫머리에, “백년전 8월, 일한병합조약이 체결돼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습니다.”라고 한 부분이다. ‘병합조약이 체결돼’에 어떤 수식어나 제한조항도 붙이지 않았다. 간(管) 총리는 병합조약을 너무도 당당하고 합법적인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그래놓고 중간에 병합조약의 실현인 ‘식민지지배’가 강제성 운운의 뉘앙스를 머금게 했을리는 없는 것 아닌가.

    '역사의 숙제' 건너뛰지 못해

    ‘강제성인정’ 운운의 두번째 연유는 우리가 그동안 역사적 콘텍스트 위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적으로 일본을 지켜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 문제는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이 시작되던 1951년 이래의 문제다.

    회담에서는 병합조약까지의 한.일 간 여러 조약의 원천적 무효화를 선언토록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도 가고, 청구권 자금으로 회담을 마무리 하게 되면서, 병합조약 등의 원천적무효화는 역사의 숙제로 남게 되었다.

    무효화의 하나의 열쇠는 일본이 식민지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거운 의미가 있는 ‘강제성 인정’을 일본이 무슨 교섭이 있은 것도 아닌데, 또 패전 등으로 이른바 ‘부끄럼 문화’의 외면적 강제성이 가해진 것도 없는데, 중대한 입장변화를 일으켰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극일의 길은 아직 멀다. 동아시아 상황에서 전략적 바게인 포인트를 알아볼 줄 알아야 할 것이고, 원천 무효화하여 과거청산을 하루빨리 완결하는 것이 양민족이 지금 살 길임을 저들에게 알게 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숙제는 절대로 레토릭 같은 것으로는 피해 갈 수 없는 것임을 이런 기회에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