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의 정치전쟁 공세와 역전의 전략

    50%에 달하는 대통령 지지율과, 정부의 천안함 사태 대응조처에 대한 국민다수와 주축언론의 압도적 공감은 연이어 졌던 지방선거의 여권 완패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의문이 남았을 것이다.
    특히 여권 인사들에게, ‘견제민심’이나 ‘소통’만으로는 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천안함 사태로 접근해 본다. 사태는 아군의 함정이 적방으로부터 기습 당한 대적(對敵)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 ▲ 허문도씨. ⓒ 뉴데일리
    ▲ 허문도씨. ⓒ 뉴데일리



    대적상황의 문제에 의문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전쟁의 논리로 풀어 보는 것이 순서다.
    아무리 첨단 병기가 발달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철리(哲理)가 있다. ‘전쟁은 정치의 도구’라는 것이다. 원조 클라우제비츠의 표현을 새삼스럽게 옮기면, ‘전쟁이란,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정치의 연장일 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전쟁이란, 혹은 군사공격이라 해도 좋고, 정치와 따로 떨어져서 독립하여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치러내고 있는 우리 정치인, 지도자들이 제일 명념해야 할 얘기가 아닌가 한다.

    생사를 걸고 일 벌이려 드는 자들한테 전쟁 따로, 정치 따로는 없는 것이다.
    전쟁을 지도하는 자의 염두에 정치가 있기 때문에, 군사공격의 궁극적 목적은 적의 섬멸이기 보다는 정치를 조종하는 적 수뇌부의 의지에 변화를 일으키고 의지를 제압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전쟁론은 전쟁에 이기기 위한 방략인 전략의 노림수를, 적방에 의지를 흐트려 버리는 ‘교란’ 혹은 ‘정신적 해체’에다 두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일어나 있는 현상, 두눈 뜨고 과학의 결론을 아니라 하는 자가 무더기로 생겨나고, ‘국민’이라면서 국가정체성의 울타리를 예사로 뛰쳐나가 버리는 현상 - 이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해체’라고 할 만하다. 북의 전략의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정책상의 목적달성과 무관한 전략은 있을 수 없다.
    ‘전략이란 군사력을 정치목적에 연결지우는 가교’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전략원칙에 투철한 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군사공격은 ‘전투를 엮어 실행에 옮기는 활동’과 ‘그 전투의 결과를 정치목적에 결부시키는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정도를 확인하고서, 서두의 천안함과 선거문제로 들어간다.

    먼저 지적해 둘 것은, 감사에서 드러났지만, 천안함 사태까지의 우리군대는 태평양 전쟁의 일본군대, 베트남전의 미국군대 급으로 전략부재의 군대였다는 것이다. 예상된 공격에 대비하지 않는 군대, 반잠수정이 새떼로 둔갑하는 거짓말보고가 복수의 상하간에 용인된 분위기의 군대, 반격 결단의 기를 놓치게 하는 늑장 지연보고의 깨어있지 않은 군대, 이런 군대는 국방비를 많이 쓴다 해도 전쟁할 수 없는 군대다. 그 정도의 희생으로, 이 같은 실상을 알게 된 것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 같은 군대의 핵임의 귀속처는 대전략의 주재자인 최고사령관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녹림군, 룸펜 프로레타리아, 빈농군상의 집합체인 중국 홍군을 강대한 장개석 군대를 구축하는 강군으로 만든 것은 모택동 한 사람이었고, 프랑스 혁명정부의 오합지졸 같은 군대를 유럽을 재패하는 군대로 만든 것은 나폴레옹 한사람이었다.

    정치공격의 시동

    군사적 승부없이 통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북의 선군주의다.
    위에서 보았던 전쟁과 전략의 논리에 투철할 수 밖에 없는 북측은, 천안함 폭침만으로 ‘상황끝’하지 않는 집단인 것을 태평성대 속의 남쪽 천지가 알게 하는 지도자는 없어 보인다.
    폭침에 이어 가해주체를 규명하는 작업이 무슨 해난사고라도 만난 양 매스콤을 통해 국민시선을 모아놓고 진행되었다. 남측이 이공적, 자연과학적 진실추구를 위해 벌려 놓은 공간을 북측은 인문적, 정치선전의 마당으로 활용했다.

    신문논조는 정부가 결론낸 다음에도 의혹제기를 계속하는 ‘정치선전’을 두고 과학을 모른다, 괴담이다, 도덕성이 어떻다고 비아냥을 해댔다. 이들이 과학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남쪽의 조야가 ‘전쟁이 뭔지를 모른다’가 더 맞을 것이다.
    북측은 폭침이라는 ‘전투의 결과’를 ‘정치목적에 결부시키는 활동’을 한 것이다. 이때에 좌익정권 10년에 남쪽에 뿌리내린 북측의 콤만도나 에이전트는 선전부대로 모자랄 것이 없었다. 국내건 국외건 출격을 가리지 않았다.

    진상발표 후의 북측의 선전주제는 전쟁위기 강조였다. 지방선거 날을 일주일 남겨놓은 5월 26일에는 인터넷에 ‘내일 아님 모레 전쟁’이라고 올랐다.
    이어서 ‘군인과 예비군, 만 17세 이상 남자들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대통령 때문에 모두 죽게 생겼다.’가 떴다.

    드디어 전쟁공포와 염전사상을 터뜨리고 나온 것이다. 전쟁이 났다면 먼저 전쟁터에 나가야 할 세대인 20-30대를 향해 정확하게 겨냥된 정치어뢰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살고 있는 민, 정, 관, 군 모두의 감각이 천안함 기습에 이어지는 북의 전략에 연동하는 정치공격을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눈이 밝은 주축 언론조차가 북 오리진의 ‘정치어뢰’를 과학적 몰상식, 도덕적 미국성, 철부지들의 인터넷 심심풀이-괴담 이상으로 대접을 못했다. 선거 하루 이틀 남겨놓고 ‘1번 찍으면 전쟁난다.’는 삐라가 전국적으로 뿌려진 것 같다. 선거 전날 접적지역인 강원도 고성을 다녀온 사람이 전언했고, 서울지역의 보도도 있었다. 여권의 정치인들은 강원도의 정치전향의 이유로서, 아무라도 떠드는 ‘견제민심’이나 ‘소통’ 말고 아는 것이 있는가.

    지방선거로 깨져 나간 것은 50%에 달했던 대통령 지지의 중도선호여론이 아닐 것인가.
    대적(對敵) 상황에서 중도론은 이념일 수 없다. 대결의 현실에서 이념적 긴장이 싫어서 피신한 공간이 중도 실용의 세계인 것이다. 리스크 부담 앞에 서기만 하면, 하루아침에 깨져나갈 숙명이 중도선호여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북의 전략은 남쪽 내부를 잘도 꿰뚫어 보고, 군대 가기 싫은 풍요속의 인터넷 세대와 리스크라면 피하고 싶은 중도선호여론 앞에 정확하게 전쟁공포를 들이 댔던 것이다.

    북의 전략에 공략당한 남쪽 수뇌부의 의지는 흔들려 보인다.
    내용이 무엇이든 선거 전에 추진하던 정책을 선거 후에 포기하도록 방치한다면, 이는 북의 전략의도에 영합하는 행위일 수 밖에 없다. 북의 기습이 만들어 낸 정치구도이다. 북의 전략의도에 영합한 지도자를 잠을 깬 국민은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평화통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여권에 대국을 볼 줄 아는 눈은 없는가. 딴 곳 쳐다보는 사람들하고 초당체제 한다 말고, 거당체제라도 성사시킨다면 역전의 전략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천하가 품을 벌릴 것이다.

    북의 천안함 폭침 전략이 일으킨 남북 상황의 질적 변화 두가지를 지적해 두겠다.
    통일당한 월남의 길을 가지 않겠다면 절대로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첫째로는, 그동안 3차에 걸친 서해해전에서 드러났던, 물량적 열세를 극복할 비정규전의 전술을 북은 드디어 개발해 냈다는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모택동이 물량적으로 우세했던 장개석의 포위토벌전을 극복하고자, 유격전술을 창안하여 反포위토벌전의 전략기초를 확립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둘째로는, 군사공격에서 시발한 전략이 추구하는 정치공세를 통해 북은 남의 정치판을 요리할 확실한 실적과 공산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그 위에 좌익정권이 10년이 남긴 남쪽 사회내 진지의 효능을 십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적의 전선이 사회내부에 생겨나고 말았다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월남전에서 공산측이 테뜨공세(68년 구정, 전국적 동시 다발 도시 게릴라)를 통해 얻게 된 정치효과에 비견할만 한 것이다. 테뜨공세를 통해 공산측은 군사적으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도시지역인데다 공산측이 선전공세를 곁들여서, 미국의 안방에 TV와 언론을 통해 과장된 미군에 의한 희생과 전쟁의 참혹상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반전여론에 문이 열렸다. 월남전의 터닝포인트였다.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이 반전여론의 연장선상에서 전투에서는 패해 본 적이 없는 미군이 초기의 목적을 버린 채 철수하고, 패전하고 만 것이다.

    천안함 사태가 가져온 위의 두가지 실점은 대한민국이 로마에 멸망당한 경제대국 카르타고나 통일당한 구 베트남의 길을 가지 않으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알았다면 희망은 있다. 역전의 전략을 창안, 가동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