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fused Korea, 대한민국은 지금 방황하고 있다.

  • ▲ 유영은 ⓒ 뉴데일리
    ▲ 유영은 ⓒ 뉴데일리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탄을 자아내며 빠른 속도의 성장을 이어오던 대한민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한 후로 10년이 넘도록 선진국의 문턱에서 서성이기만 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 전에 ‘후진국’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렸으며, ‘개발도상국’이라는 수식어도 어색할 만큼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선진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성장에 제동이 걸려버림으로써,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닌 애매모호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우리의 발자취는 ‘진보’의 연속이건만, 우리의 현주소는 ‘정체’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또 한 번의 ‘진보’, 즉 진정한 선진 사회로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3월 25일, ‘한국선진화포럼’은 명동 전국은행연합회에서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주제로 제 43차 월례토론회를 가졌다. 대한민국이 선진사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민의식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요지였다.
    발제를 맡은 강규형 교수, 김종석 교수, 김인섭 변호사는 각각 ‘국가정통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공감대’, ‘민주질서와 법치주의의 확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촉구했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 필적하는 경제 규모를 갖추고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정으로 볼 때, ‘국민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 부분에 대한 문제지적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논리이다.

    지난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아 불거졌었던 대한민국 건국기점에 대한 논쟁을 돌이켜 보자.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자는 법안이 제출되었는가 하면, 대한민국의 건국의 기점으로 1948년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들도 등장했었다. 건국은 단군 할아버지 때 이미 한 것이 아니냐는 상당히 억지스러운 주장에서부터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던 1919년이 건국의 기점이 되야 한다는 의미 있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논란이 계속되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역사관의 혼란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탄생이 언제인지에 대해서 조차 확신이 없는 Confused Society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탄생이 언제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가능케 한 근간을 왜곡하고 폄하하기까지 하고 있다.
    ‘시장경제’는 ‘부자들을 위한 경제’, ‘착취의 논리’라는 등의 ‘시장경제비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경제 체제의 근간을 ‘시장경제’에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을까?

    ‘시장경제’를 비난하며 ‘공산주의’를 채택했던 북한의 국민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영양실조 상태에 허덕이고 있다.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또 다른 나라인 중국은 ‘시장경제’의 논리를 일부 수용함에 따라 기존의 궁핍함에서 벗어나 미국에 대적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시장경제’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경제 체제이다.

    같은 기회를 부여 받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시장경제’는 ‘부자들을 위한 경제’, ‘착취의 논리’라는 식의 비난은, 결국 ‘기회의 균등’보다는 ‘결과의 균등’을 지향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과연 ‘결과의 균등’이 ‘기회의 균등’보다 바람직한가?
    서로 다른 정도의 노력과 능력 발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결과물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행복할 것인가? 이 사회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감정에 치우친 마음이 아닌 차분한 이성으로 ‘시장경제’의 의미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국가정통성의 혼란, 경제관념의 혼란과 더불어 대한민국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는 큰 걸림돌이 있으니 바로 법치주의의 혼란이다.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지 모르나, 그것은 적어도 대다수의 국민이 수용할 수는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사법부의 판결은 반발의 대상이다. 사법부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국민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며 비난한다.
    얼마 전, 사법부는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 전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MBC PD 수첩 제작진에 대하여 ‘과장은 맞으나 허위는 아니다.’라는 황당한 판결을 내렸다. 광우병 소가 아닌 것을 광우병 소라 하여 사회적 공포감을 조성했건만, 그것이 어떻게 ‘허위’가 아닌 ‘과장’이란 말인가?
    상황이 이러하니, 대한민국이 과연 ‘법치주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하는 회의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자아’에 대한 ‘확신’이 없는 개인은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는 데에서부터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불안을 수반한 심적 고통을 겪으며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번번히 좌절하고 방황한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가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성장과 발전을 모색하고 추진할 수 있겠는가?
    ‘국가정체성’에 대한 ‘확신’은 국민들 사이에서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은 ‘국가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보다 쉽게 화합할 수 있으며, 공통의 목표 의식을 함양할 수 있다. ‘국가정체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국민들로 하여금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여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아가, ‘국가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확고한 국가이미지를 갖고 존중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국가 정통성의 혼란’, ‘경제관념의 혼란’, ‘법치주의의 혼란’의 3大혼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의식이 ‘국가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지닌 국민의식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재차 강조되어야 할 것은, Confused Korea에서 벗어나 Convinced Korea가 되지 않고서는, 지금의 ‘정체’를 근본적으로 극복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