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끝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카타리나 비트(옛 동독)나 미셸 콴(미국) 같은 세계적 빙상요정의 반열에 김연아가 우뚝 올라 섰다.
    수천 년을 한반도라는 작은 무대에 갇혀 지내온 한국인들이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풀 밭(박세리 최경주 양용은)과 물 속(박태환)에 이어 얼음판에서도 한국인의 기량이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하드 파워(Hard Power-군사력 경제력) 보다 소프트 파워(Soft Power-국가의 품격과 이미지 및 문화력)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로들 앞 다투어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하려고 한다.
    실제로 그런 국가적 세계적 이벤트를 통해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 수준이 상승한다.
    1964년 동경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한 일본이 그랬다.
    우리도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을 거침으로써 세계 무대에 코리아란 이름을 알렸다. 중국 역시 2008년 북경올림픽을 통해 중국의 힘을 과시했다.

    소프트 파워의 증대와 국가의 품격(국격) 상승에 스포츠가 기여하는 힘은 엄청나다.
    그렇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스포츠 계의 강자로 등극한 중국과 경제력을 갖춘 일본을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을 무서워하고 경계는 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힘은 인정 하지만, 뒤에서는 천박하다고 비판한다.

    중국과 일본이 그둘의 힘에 걸맞는 국격(國格)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돈 있고 권력 있다고 해서 인격(人格)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처럼 국격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서구 사회에서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에 대한 공헌 및 봉사를 뜻한다.
    이 말은 개개인 인격체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격체에도 적용된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이 가치 절하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국가와 국민 차원의 봉사와 공헌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문화적 예술적 교양과 행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글리 차이니즈, 어글리 재패니즈, 어글리 코리안 말들을 생각하면 국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동계 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여수 세계 엑스포와 G20세계정상회의 유치에도 성공해 국격 상승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위치는 수출입 경제규모로 13위이지만 국가브랜드 가치는 2008년 조사에서 33위에 머물고 있다. 하드 파워도 중국과 일본에 뒤지고, 소프트 파워도 뛰어나지 않다.
    한마디로 돈도 많지 않고, 힘도 세지 않고, 머리 수도 많지 않고, 놀랄만한 과학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국민 전체의 문화적 역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월등치도 않다.
    어정쩡한 것이다.

    지난 3월5일 제주도에선 2012년 세계자연보전총회(WCC, World Conservation Congress)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과 환경부 제주도 사이에 체결됐다.
    언론의 주목도는 적았다. 그러니 국민들도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IOC나 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는 알아도 IUCN이 무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IUCN은 한마디로 인류가 발 디디고 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1948년에 UN의 지원으로 결성된 국제기구이다.
    1973년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과 1982년 생물다양성 협약을 기초했다.
    UN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자연헌장(World Charter for Nature)의 초안을 마련한 것도 IUCN이다.
    제주도를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시킨 실질적 심사권한도 IUCN이 행사했다.
    전 세계 60여 개의 사무소에 1천여 명의 전문직원을 갖고 있다.
    80개 국가회원 160개국 112개 정부기관 870여 개의 NGO가 회원으로 가입해 1만1천여 명의 전문가가 6개 위원회로 나뉘어 활동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단체다.
    UN총회 옵저버 참석 자격도 영구적으로 갖고 있는 세계유일의 환경단체다.
    막강한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진 것이다.

    IUCN은 올림픽과 월드컵처럼 4년 마다 한 번씩 WCC를 개최하고 있다.
    그래서 서구 언론들은 WCC를 환경올림픽이라고 부르고 있다.
    2012년 9월 6일부터 10일간 열리는 WCC 기간 동안 전세계에서 160여 개 국가의 정부대표는 물론 1천1백여 개의 환경운동 단체(NGO)에서 1만여 명이 제주로 몰려 올 것이다.
    지구환경문제 전반과 다자간 국제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가 펼쳐질 것이다.
    자연보전,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지속가능발전 등에 대한 인식과 국제질서를 새로 짜는 마당이 열릴 것이다. 2008년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람사르 총회의 4배 이상 규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참가 규모가 1만 명이었다. 그 규모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WCC에 관심이 없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환경올림픽을 통해 지구사회에 공헌하고 봉사하는 한국과 한국인이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지(知)덕(德)체(體) 3박자를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게 인격교육의 목표라면, 우린 환경 올림픽을 통해 전지구적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생각하고 공헌과 봉사할 능력을 갖춘 국가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제주 WCC 총회 개최를 단순하게 제주도 관광 활성화 같은 부대 경제 효과 내지 이미지 고양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해하는 정부와 국민으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게 될 때 대한민국의 국격과 한국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한 단계 상승하게 될 것이다.

    2012년이면 마침 4대강 정비사업도 마무리 수준에 접어들 것이다.
    일부의 치열한 반대와 비판이 있지만, 4대강의 수질 보호와 자연보전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세계 전문가들이 판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환경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획기적 인식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음 직하다.

    2010년 11월의 G20정상회의와 2012년 5~8월 여수세계엑스포에 이은 2012년 9월의 환경올림픽에 국민적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국가적 리더십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