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정부위원회라는 데에 몇 차례 관여해 본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내가 왜 이런 위원회에 걸려들었나 하는 자괴감이었다. 결국은 공무원들의 들러리를 선 것밖엔 안 되었다. 그렇다고 불명예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웃기는 게 정부위원회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근래 사회통합위원회라는 정부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들이 다 훌륭한 분들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도 있고 모르는 분들도 있지만. 그리고 이왕 그런 위원회가 생겼으니 아무쪼록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려 한다. 또 정말로 좋은 의견이 나오면 아낌 없는 박수를 칠 용의도 분명히 있다.

    대통령과 가진 간담회에서 위원 여러분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 것으로 읽었다. 보수적인 분들, 진보적인 분들, 중도적인 분들 모두가 우리사회의 갈등해소와 관련해 “잘해봅시다” 라는 취지의 발언들을 했다. 굳이 시비할 이유가 없는 덕담들이었다.

    다만-. 어는 한 분이 “양극화의 주역 한 사람이 당신 왜 그랬느냐고 묻자, 그건 내 생존법이다라고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이 인용한 ‘양극화의 주역’라는 인사가 세칭 ‘보수우파’인지 ‘진보좌파’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뭐라고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양극화라는 용어 자체에 관해서만은 약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양극화(bipolarization)란 무엇인가? 긴 이야기 할 필요 없이, 양쪽 극단이란 현대정치사 내지 현대정치 사상사에선 극좌(공산주의적, 무정부주의적 폭력혁명과 1당 독재적 전체주의)와 극우(파시스트, 나치스, 군국주의적 폭력혁명과 1당 독재적 전체주의)를 말해 왔다. 

    그렇다면 근래의 또는 오늘의 한국에서는 양극화란 무엇인가? 1987년의 민주화 이후를 두고 말할 때, 우선 극좌가 있는가 없는가? 유신 시대나 신군부 시대의 대법원 아닌 민주화 시대의 대법원이 ‘이적단체’라는 이유로 일부 그룹과 개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을 보면 미상불 친북적인 극좌가 있기는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민주화 이후의 한국에 극우는 있는가 없는가? 대법원이 일부 단체나 개인들을 ‘헌정 체제를 부정하는 우익 폭력혁명론자’라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린 적은 우선 없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폭력으로라도 집어치우고 우익 1당 독재나 군사독재를 하자”는 단체나 개인들이 과연 있는지? 적어도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에 와서. 

    그렇다면 사회통합위원회의 어떤 인사가 ‘양극화의 주역’이라고 인용한 사람은 어느 쪽 극단일까 궁금해진다. 왼쪽 극단이라면 대법원이 ‘이적단체’라고 판시한 범주의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오른 쪽 극단이라면 “민주화 시대의 한국에도 나치스 파시스트 류(類)의 우익 폭력혁명론자나 우익 1당 독재론자가 있었던가?” 하는, 마치 명종동물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호기심이 부쩍 든다.

    사회통합위원회의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