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숙 전 총리의 처신을 보자면 한 고상한 인간도 패거리의 구속을 받으면 이상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내 아내는 1974년 그녀를 만나 청신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천주교 메리놀 선교회의 한 미국인 신부님이 소개해서 만나 보았다고 한다. 

    신부님은 그 두 여인이 다 남편을 교도소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 동병상련의 공통분모를 읽었던 것 같다. 그녀의 남편은 1968년의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이미 여러 해 감옥에 있었고, 나는 1974년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죽을둥 살둥 할 때였다. 아내는 훗날 한명숙 씨가 대단히 스마트하고 지성적인 인물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한명숙 씨가 비록 나와는 합치될 수 없는 편에 소속돼 있을지라도 그 분을 개인적, 인간적으로는 ‘괜찮은 분’으로 분류해 왔다. 생김새부터가 화사하고 원만해 보이지 않는가? 저런 관상을 가진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미소도 아름답고, 처신도 관후(寬厚)하다.

    그런데… 그 분이 검찰수사에 불응한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사람이 아무리 괜찮아도 일단 정치적인 패거리에 묶이면 그 패거리의 논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가보구나 하는 절망감을 새삼 느낀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960년대나, 1970년대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2000년대의 자유민주 대한민국이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검찰의 소환에 불응한다는 것은 민주화 운동도 아니고, 진보운동도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교통질서를 어겼을 때도 경찰관의 취체에 ‘공작 정치’라며 반항해야 할 판이다.

    돈 준 사람은 미화 5만 달러를 인사 청탁으로 한명숙 총리에게 건넸다고 했다. 그러나 한 총리는 단돈 1원도 받지 않았고 했다. 그렇다면 그 진실 여부는 어떻게 가려야 하는가. 두 말 할 나위 없이 양자가 무릎 맞춤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권력의 대표인 검사 앞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한명숙 씨는 그것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게 내 아내가 나에게 전한 ‘괜찮은 여성 한명숙’의 이미지에 맞는 이야기인가. 자신만만 하면 왜 검찰수사에 불응하는가. 도대체 민주시대의 민주국가의 검찰을 통하지 않고 그럼 무슨 방법으로 진실을 가리겠다는 것인가. 다른 방법이 과연 있는가.

    단 돈 1원도 안 받았다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뭐가 있는가. 검사 아니라 염라대왕 앞에 나간다 해도 “여보시오, 염라대왕, 내 알고 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당신 지금 뭔 소릴 하는거야. 증거 있음 내놔 봐!”‘ 하고 야료하면 될 것 아닌가?

    한명숙 총리, 5만 달러의 진상을 밝히는 데 인생을 거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 검찰을 떠나서는 가려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