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희한한 이야기를 들었다. 언론을 포함한 공인들이 이 문제에 관해 딱부러진 찬반 의사를 표하기를 꺼려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법, 충청지역 여론, ‘차기’의 유력 주자 박근혜 씨에 대한 고려...등등으로 인해 그 어느 쪽의 미움도 사지 않겠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지금 가장 크게 걸려 있는 것은 해당지역 주민들의 행복 추구권의 극대화라는 본연의 논제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타산의 충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참, 더럽고 치사한 이야기다. 세종시 논란은 결국 순수한 세종시 문제 자체가 아니라, 정쟁인 셈이다.

    “원안대로 가면 나는 편하다”고 이명박 대통령은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원안대로’로는 양심의 가책이 든다” “찬성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대통령의 이 말에 진정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는 세종시를 훌륭한 도시로 만들자는 데에 반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행정부처의 분산에 대해서만 다시 한 번 숙고하고 고민해보자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모여 앉아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떠나 “행정부처의 분산이 초래할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말로 문제가 있다면 행정부처 분산이 아니고서도 세종시를 100점 만점의 근사한 신도시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없는지를 그야말로 고민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논의는 그런 방식으로 흐르지 않고 정치적 고려에 따른 막무가내 정쟁으로 일탈하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충청 민심, 충청도 표(票)를 의식한 정치적 고려라는 게 우선 그렇다. 충청 민심이라고 하지만, 똑같은 충청도라고 해도 충청도의 이곳 민심 다르고 저 곳 민심 다르다. 그렇다면 충청도 표(票)의 향방이라는 것도 설득 여하에 따라서는 이곳 다르고 저곳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행정부처 분산보다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하면서 정말로 그런 보다 나은 대안을 삐까뻔쩍하게 만들어 보이면 표(票)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한 번 약속했으니 지켜야 한다고 한다. 말이야 근사한 명언 중 명언이다.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소크라테스님이 모두 감복하실 말씀이다. 그러나 “반대했다간 벼락맞을 것 같아서 찬성했다”고 한다면, 그런 약속은 폐기 아닌 수정을 시도할 수 있다. 폐기는 안 된다. 그러나 고칠 수는 있다. 그것도 보다 나은 방향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 좋은 방향으로 고치는 것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옹고집밖엔 안 된다. 세종시 문제가 뭐 어디 조선시대의 성리학이라도 되는가? “원안대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이라면 그건 ’원안대로’보다 더 좋은 안이 있다 해도 싫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나 박근혜 씨의 마음을 사는 일에 실패한 측면을, 정치인(그는 정치인이 되기를 처음부터 배척한 것 같기는 하지만)으로서, 통치자로서 자성할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