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 김영환 공군 준장. ⓒ 뉴데일리
    ▲ 고 김영환 공군 준장. ⓒ 뉴데일리

    팔만대장경을 지킨 ‘빨간 마후라’가 59년 만인 내년 2010년에 문화훈장을 추서받게 됐다.
    지난 14일 오전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에서는 6.25동란 중 해인사 공습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을 지킨 고 김영환 공군 준장을 기리는 호국추모재가 열렸다.
    조계종 종정 도림 법전 대종사와 총무원장 자승 스님, 최구식 의원, 김태호 경남지사 등이 참석한 이날 추모재에서 유족 대표인 김태자씨는 “해인사 스님들과 고인의 전우들의 성원으로 매년 호국추모재를 거행하고 특히 내년 추모재엔 문화훈장을 추서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고 김영환 장군의 친형인 고 김정렬 전 국무총리의 딸로 고인의 조카이다.
    김씨와 윤응렬, 이강수씨 등 공군 예비역 장군들, 해인사 측은 김영환 장군의 목숨을 건 팔만대장경 수호가 일부에 의해 왜곡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10여 년이 넘게 전사(戰史)를 감토하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 ▲ 고 김영환 공군 준장의 호국추모재가 14일 해인사에서 열렸다. ⓒ 뉴데일리
    ▲ 고 김영환 공군 준장의 호국추모재가 14일 해인사에서 열렸다. ⓒ 뉴데일리

    공군창설 7인 간부의 일원이었던 김영환 장군은 6·25가 발발하자 T-6 훈련기를 조종하여 저공비행으로 적 전차와 차량에 폭탄과 수류탄을 던지는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 큰 공을 세웠다. 또 한국 공군 최초로 10명의 동료와 함께 무스탕 전투기를 미 공군으로부터 인수해 전투기 조종사로서 수많은 전공을 거뒀다.

     그는 해인사가 인근 빨치산과 북한군 패잔병에게 점령된 상태이던 1951년 8월 현지에서 전투를 치르던 경찰부대의 긴급 지원 요청을 받은 미 제5공군이 해인사 타격을 지시하자 편대장으로 출격했다. 타격 지점인 해인사 상공에 이르자 김 장군(당시 계급은 대령)은 순간 적으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이 떠올리고 공격을 멈추고 기지로 귀환했다.
    그는 명령 거부의 질책에 “영국 사람들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한국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 아닌가? 수백 명의 적들 때문에 한국만 아닌 인류의 유산을 파괴할 수는 없었다”고 당당히 대답했다.

    김 대령은 다시 무전기를 잡았다. “전대, 해인사 뒤의 적 보급기지만 공격하고 기지로 돌아간다.” 갑작스런 귀환 지시를 모니터링 하던 비행단에서 추궁이 날아왔다. “왜 해인사를 타격하지 않는가?” “빨치산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겠습니다.” “귀관의 지금 행동은 항명이다.”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그는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보급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51년 어느 날 그가 친형 김정렬 장군 집에 들렀을 때 형수가 만들어준 머플러를 받아 맨 것이 공군 ‘빨간 마후라’의 시작이다.
    휴전 이후에도 전투조종사 양성 등 공군 전력 향상을 위해 헌신했던 김 장군은 1954년 3월 5일 F-51 전투기를 조종해 사천에서 강릉기지를 향하던 중 악천후로 추락해 34세로 순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