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국제정치는 역시 힘의 세계임을 클린턴-김정일 담판은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김정일이 중국을 등에 업고 핵-미사일과 여기자 억류라는 힘으로 밀어붙이니까 미국도 ‘힘에 대해서는 힘의 계산법’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치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으름장을 놓으면서 미국에 대해 이쪽 나름의 지렛대를 동원하곤 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을 달래기 위해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지금은 물론 그 때와는 다른 시대이기는 하다. 그러나 ‘힘의 이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미국이 자기들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것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한국이 무슨 지렛대를 동원해 “그 과정에서 우리를 만약 무시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사전 사후에 놓을 수 있었겠는지 의아하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우선 이승만-박정희 같은 강한 氣質도 지금은 없으니 말이다.

    김일성 김정일은 철저한 ‘힘의 신봉자’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도 그런 ‘힘의 이치’를 투철하게 인식한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한-미 동맹의 테두리 안에서일지라도 이승만 박정희는 ‘수틀릴 때마다’ 미국의 국가 이익에 대해 한국의 국가 이익을 들이댔다. 지금의 한국에는 그런 비상하고 비장한 의지와 신념의 리더십도 없다. 

    미국과 북한의 직접 담판은 비단 여기자 석방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평화 협정, 주한미군의 존재, 한-미 동맹의 미래...라는 본질적 문제를 두고서도 김정일은 계속 미국에 대해 이런 패턴의 ‘힘의 논리’로 파고들 것이다. 한국의 좌파는 물론 非좌파에도 ‘정서적 민족주의’가 침윤해 있는 오늘의 한국을 보면서 미국 역시 한국, 한국인들에 대해 전처럼 각별한 ‘혈맹’ 의식을 계속 가져줄 이유도 점점 없어지고 있는 오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한 마디로, 한국인들은 이제 매사 자업자득임을 알아야 할 시대를 맞고 있다. 매사 자기 할 탓이란 이야기다. 미-북 직접 담판이 한반도의 정세를 어디로 끌고 가든, 거기엔 이 시대 한국인들의 자업자득의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리란 점이다.

    반미 정서, 유화주의, 기회주의, 투지 박약, 섣부른 환상, 힘의 논리에 대한 인식 부재...이런 게 있었다면 그 이후의 정세는 분명히 한국인들 자신의 因果應報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시대 한국인들은 이제 알아서 해야 한다. 예컨대 쌍용자동차 노조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매사 그런 '386 식' 풍조대로 사고하고 처신하고 선택하면 나라의 척추도 부러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은 그런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한 당대의 한국인들이 당연히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