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이승만 초대 대통령 44주기를 맞는다.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에 비해 역사를 잘 다룰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마오쩌뚱을 어떻게 다루는가? “마오 주석은 대부분 잘했고 말년에 조금 잘못했다”고 정리한다. 왜 그렇게 정리하는가? 마오를 몽땅 부정하면 중국 현대사를 몽땅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61년사는 5000년 역사에서 최초로 3 가지 위업을 이룩했다. 대한민국 건국은 한반도에 최초로 근대국민국가를, 중국적 세계관 대신 해양적 세계관을, 그리고 자유 민주 공화 인권, 개인의 혁명을 이룩한 혁명이었다. 이것을 주도한 이승만의 功은 그의 過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그리고 액면 그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한국인들은 자기부정의 블랙홀에 빠져버릴 것이다.

    우리 사회 일부는 김일성 박헌영의 입장에서, 여운형의 입장에서, 김규식의 입장에서, 김구의 입장에서 이승만의 건국 노선을 아직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김일성 박헌영의 입장은 대책이 없는 것이니 그냥 전면 배척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운형 김규식 김구의 노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김일성 박헌영을 추종하는 세력도 여운형 김규식 김구의 좌우합작 노선의 탈을 쓰고서 대한민국 건국 노선을 부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운형 김규식의 좌우합작 운동은 우익 진영 뿐만 아니라 남노당도 함께 깬 것이라는 것을 우선 상기해야 한다.  20세기 들어 국제정치가 로칼 정치를 압도하는 시대에, 여운형 김규식의 좌우합작 운동은 일견 근사하게 보이는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세계사의 대세와는, 막스 베버의 말대로  ‘선택적 친화력(selective affinity)’이 없는 卓上상의 논의였다. 국제정치도, 김일성도, 남한 우익도, 모두가 냉담하게 바라본 그들의 운동은 당초부터 성사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역사는 현실이지 관념이 아니란 이야기다. 김일성도 남노당도, 그리고 그들의 극좌 혁명이 남쪽에서도 성공하면 몰살을 당할 남한의 非 공산주의 세력도 "나 몰라라" 발을 뺀 좌우합작이 대체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겠는가?

    여운형 김규식 김구 노선은 또한, 대한민국 건국 노선을 ‘분단’이라며 비난한다. 그러나 분단은 이미 북한지역에서 소련의 지령을 받는 김일성의 인민위원회 혁명독재가 착착 강행 되면서부터,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이 추구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것임을 또한 알아야 한다. 김일성의 1당 1인 독재가 상대방을 처형하는 마당에 그 처형 대상들은 가만히 앉아서 죽어주는 것, 그게 통일인가? 그런 통일을 정말 바라는가?

    대한민국 건국 진영이 김구 선생처럼 남북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론이 필요하다. 김구 선생 등이 그렇게 남북협상에 갔다 와서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김구 선생의 민족적 충정은 물론 뜨거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평가하는 것하고, 6.25 남침으로 드러난 남북협상의 희극성과 기만성을 똑바로 보는 것하고는 함께 불분명하게 섞어서는 안 될 냉엄한 역사의 진실 그 자체다. 남북협상은 소련과 김일성의 남조선 무력혁명을 앞둔 그들의 통일전선 전술의 한 소도구였을 뿐이다. 여기에 속아주어야 '민족주의자'이고, 속아주지 않으면 '反민족주의자'인가?

    해방공간의 '중간파" '좌우합작파'의 민족주의적, 동족상잔 회피적 충정 자체를 경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분들의 고매한 이상에 대해서도 그 만한 경의를 표할 용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분들의 가치를 대한민국의 한 귀한 역사적 자산으로 흡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대한민국 건국 노선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동원하는 일부의 정치적 음모에 대해서는 냉철한 知的 분별력으로 반론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노선이 없었더라면? 각자가 이것을 주제로 고백성사를 했으면 한다. 그것이 없었다면 통일(공산 통일)이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 하는 진영과, 그것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의 이 만한 삶이 가능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진영의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필사의 대결-이승만 초대 대통령 44주기를 맞아 새삼 전율을 느끼며 상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