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지난 5월23일 향리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한 야산 절벽에서 투신자살(投身自殺)로 그의 생을 마무리한 전 대통령 고 노무현(盧武鉉) 씨의 ‘49재(齋)’를 겸한 ‘안장식(安葬式)’이 11일 향리 사저(私邸) 인근의 묘역(墓域)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그의 ‘49재’에 즈음한 ‘추모행사’가 서울 시청 앞 덕수궁(德壽宮) 대한문(大韓門) 앞을 비롯한 몇 군데에서 있었던 것으로 언론이 전하고 있다. 신문과 TV 들은 이날 이 안장식과 추모행사들이 “(경찰과의) 충돌 없이 끝났다”는 사실을 특히 부각시켜 보도하기도 했다. 
     
    ‘49재’와 ‘안장식’을 계기로 하는 ‘추모행사’들이 “충돌 없이 끝났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날 있었던 ‘49재’와 ‘안장식’ 행사들의 내용은 상식적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헷갈리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날 ‘49재’와 ‘안장식’ 행사 가운데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은 소위 ‘종교의식’이었다. 언론은 이날 ‘안장식’에서도 5월29일 경복궁에서 있었던 ‘국민장 영결식’ 때처럼 ‘종교의식’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불교ㆍ개신교ㆍ천주교ㆍ원불교 등 4개 종단의 ‘종교의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갖는 의문은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것이다. 필자는 어떻게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이냐는 의문을 금할 길이 없다.
     
    장의 형식이 당초 유가족들이 원했던 ‘가족장’이 되었더라도 그랬었겠지만 더구나 5월29일의 발인 절차가 ‘국민장’이었으니만큼 원하는 국민은 당연히 누구나 고인의 영전(靈前)에 조문(弔問)할 수 있는 것이었음에는 아무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같은 조문이 종교의 차이 때문에 차별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각자가 믿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조문을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의 자연인 조문객으로 고인의 영전에 조문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고인을 위한 ‘발인’이나 ‘안장식’ 같은 장의 행사에서 종교단체가 ‘종교의식’을 갖는 것은 경우가 다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같은 ‘종교행사’는 당연히 고인의 소속했던 종교 단체가 주관하는 ‘종교의식’으로 되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생전의 고인이 소속한 종교가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았던 것 같지 않다. 그러나, 5월29일 경복궁 ‘영결식’장에서 고인은 이날 천주교 의식을 집전한 송기인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졌다. 송 신부는 이날 그가 집전한 종교의식에서 그의 기도 가운데 고인의 교회 이름을 연호(連呼)하면서 그가 모시는 천주(天主)에게 고인을 “천당(天堂)으로 받아들여 주도록” 기구(祈求)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어렵쇼, 이것이 무슨 일인가, 이날 ‘영결식’장에서부터 속세(俗世)를 떠난 고인의 혼백(魂魄)은 네 개의 종단에 의하여 각(脚)이 뜯기고 있었다. 네 종단은 고인의 혼백을 각기 자기 것으로 각인(刻印)하려 하는 실로 엉뚱한 쟁탈전(?)을 연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결식’ 이후의 장례 절차는 더욱 엉뚱하게 진행되었다. 이제 고인의 혼백은 완전히 불교의 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인의 유해(遺骸)는 수원 ‘연화장’ 화장장으로 운구(運柩)되어 그곳에서 불교 의식에 따라 화장된 뒤 수습된 유골(遺骨)은 향리 인근 봉화산에 있는 ‘정토원(淨土院)’이라는 이름의 불교 사찰에 봉안(奉安)되었다. 7월10일 거행된 ‘49재’와 안장식도 철저하게 불교 위주의 의식(儀式)이다. 사실은 ‘49재’ 자체가, 기독교에는 없는, 불교에서 전래(傳來)된 의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이날 ‘안장식’에서도 불교뿐 아니라 개신교ㆍ천주교ㆍ원불교 등 4개 종단이 ‘종교의식’을 집전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장례 절차에 등장하는 ‘종교의식’은 그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종단이 그 종단이 모시는 유일신(唯一神)에게 내세(來世)에서의 망자(亡者)의 평안(平安)과 구원(救援)을 기구하는 행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번 고 노무현 씨의 경우에는, 천주교와 불교, 기독교, 원불교의 4개 종단이 경쟁적(?)으로 각기 그들의 유일신들에게 고인의 내세를 부탁하는 형국(形局)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고 노무현 씨의 경우,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간 고인의 혼백은 천주교와 기독교의 ‘하느님’과 불교와 원불교의 ‘석가모니불’에 의하여 각(脚)이 뜯긴 상태가 되어 천주교와 기독교의 ‘천국(天國)’은 물론 불교와 원불교의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어느 곳에도 다다르지 못한 채 영구히 구천(九泉)을 헤맬 수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게 된 것이다. 
     
    의문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5월29일의 ‘국민장 영결식’으로부터 7월10일의 ‘49재’와 ‘안장식’에 이르는 동안 전개된 장례 절차의 흐름은 고 노무현 씨의 혼백에 관한 한 그 소유권이 사실상 불교의 배타적인 차지가 되었다는 느낌을 금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여기서 파생되는 의문이 있다. 천주교의 입장은 어찌 되는 것이냐는 것이다. 고인이 천주교의 ‘영세’를 받았다는 사실은 ‘교회법’ 상으로는 고인의 영혼에 대한 소유권이 천주교의 것이라는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 준다. 만약, 그렇다면 천주교는 천주교 신도의 영혼을 이처럼 엉망으로 관리해도 되는 것이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법 하다. 이제부터 천주교에서는 신도들에게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더라도 ‘이교(離敎)’나 ‘파문(破門)’의 법적 조치 없이도 다른 종교로 가서 그 종교의 신도가 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다른 종교의 신도가 되지 않은 채로 그 다른 종교의 전례(典禮)에 따라도 관계없다는 면허장(免許狀)을 주었다고 해도 되는 것이냐는 의문에 대해 천주교 교회측에서 무언가 해명이 있어야 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그 이전에 해명해야 할 일이 또 있다. 고 노무현 씨의 자살은, 천주교 교회법의 입장에서는 ‘십계명(十誡命)’이 여섯 번째 항목에서 엄금하는 “자신에 대한 살인행위”를 범한 범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천주교는 5월29일의 ‘영결식’에서 송기인 신부의 집전으로 고인에게 축복을 기구했으며 그 며칠 뒤에는 명동 대성당에서 고인을 위한 추도 미사를 공식적으로 봉헌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천주교는 모든 자살자(自殺者)들에게도 차별 없이 축복을 기구하겠다는 것인지의 여부가 궁금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천주교에서는 5월29일 ‘영결식’에서 있었던 ‘종교의식’ 가운데 천주교 부분은 물론 그 뒤 명동 성당에서 있었던 ‘추도 미사’가 모두 교회 차원이 아니라 일부 신부들이 사적으로 집전한 것이라고 설명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그 같은 설명이 사회적으로 수용이 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이번 노무현 씨의 자살에 대하여 ‘일반적인 자살’로부터의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이 고인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金大中) 씨와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 등 야당 세력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위기’ 논란이다. 김대중 씨는 고인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데 대한 분노와 억울함 때문”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소위 ‘노무현 타살(他殺)’ 주장이다. 그러나, 김대중 씨의 이 같은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다. 그 동안 검ㆍ경의 조사는 물론 고 노무현 씨 가족과 측근을 통해 밝혀진 노무현 씨의 자살 동기는 김대중 씨의 주장과는 달리 전혀 다른 곳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동안 알려진 사실을 종합해 보면 그가 자살을 택한 이유는 그의 부인 권양숙(權良淑) 씨가 그의 재임기간 중에 자신도 모르게 정상문(鄭相文)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연차(朴淵次) 씨의 돈은 물론 청와대 공금에서 마련한 비자금을 받아서 아들과 딸을 위해 자의(恣意)로 사용하는 불법행위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비로소 알고 그로 인한 심적 충격과 갈등을 이겨내지 못 한데다가 정신질환의 하나인 조울증(燥鬱症)이 겹쳐서 작용한 결과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김대중 씨가 말하는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노무현 씨의 자살 동기를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시키는 김대중 씨의 주장이 억지라는 사실은 노 씨가 그의 컴퓨터 속에 남긴 ‘유서’의 내용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의 ‘유서’ 내용은 이렇게 되어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火葬)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이 짤막하고 간결한 ‘유서’의 어느 부분에도 노무현 씨가 자신의 죽음을 김대중 씨의 주장처럼 ‘민주주의 위기’와 연계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은 없다. 그의 ‘유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연(事緣)을 내용으로 담고 있을 뿐이다. 자신으로 인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고 또 앞으로도 짐이 되게 되었다”고 자책(自責)하고 ‘건강’ 악화를 호소하면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① 슬퍼하지 말 것, ② 미안해 하지 말 것, ③ 원망하지 말 것을 주문(注文)하는 것이 그 전부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발생했던 불미(不美)한 일로 인하여 그가 정신적으로 입어야 했던 도덕적 상처에 대한 그 나름의 고민이 그를 자살로 몰아갔음을 분명히 해 주는 내용이다. 이 같은 노무현 씨의 자살을 이른바 ‘민주주의의 파국(破局)’과 연계시키는 김대중 씨의 발상(發想)에서 우리는 대중선동으로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그가 이번에는 ‘악어(鰐魚)의 눈물’마저 흘리면서 파렴치하게도 심지어 고인의 죽음을 놓칠세라 이용하여 ‘사마매골(死馬賣骨)’의 정치적 농간(弄奸)을 부리려 하고 있음을 읽고 있다.
     
    천주교의 일부 신부들이 김대중 씨 류(類)의 이른바 ‘노무현 타살(他殺)설’을 들고 나와 이번 고 노무현 씨 장의 기간 중에 있었던 그들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려 시도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러나, 천주교 교회가, 만의 하나라도, 그 같은 억지 이유를 수용하여 일부 신부들의 그 같은 과잉 행동을 묵과하거나 용납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 문제는 앞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매우 심각한 화근(禍根)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