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도 이야기를 또 해야겠다. 정치적 중도 운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거기엔 반드시 몇 가지 곡해와 오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현실정치의 '중도 운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공자님 類의 철학적 中庸의 심오함을 폄하하거나 마다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정치 경제 정책적으로도 좌우의 전체주의, 획일주의, 근본주의적 처방이 중도 민주주의적 처방보다 좋다는 뜻도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현대의 정책들은 소통, 대화, 조율, 조정, 수렴, 절충, 타협, 센터로 상호 접근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정책 수준에서는 퓨전(fusion)의 모습을 띠고 있다. 작금의 '중도 운운'에 대한 논의는 이런 점을 간과하거나 시비하는 것이 아니다. 

    중도 논란과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의 중도론이 '양극단'을 배제하자"고 하는 말의 부정확성이다. 이상한 사람이 아닌 한에는 당연히 배척하게 되어 있는 '극단'이란 과연 무엇인가? 현대사를 두고 말하면 그것은 볼셰비즘과 파시즘을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양자 다 일당 독재, 획일주의, 극도의 인권유린, 전체주의, 개인의 부정, 폭력 투쟁론, 비밀경찰에 의한 강압통치, 상시적인 주민감시 체계, 대량학살, 대규모 집단 수용소, 반대자에 대한 불용납, 문화 통제, 강제적인 세뇌를 통한 사상개조 사업,...등을 강제하는 체제가 곧 '양극단'이라 할 수 있다.

    일부의 중도론자들은 이 '양극단'이 오늘의 한국에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설정을 세우고 있다. 과연 그런가? 우리 사회에 김정일의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또는 자유민주 사회보다는 예컨대 차베즈의 베네주엘라 사회주의 같은 것을 선망하면서, 모종의 민중직접지배 형태의 혁명적 콤뮨주의를 부르짖는 그룹은 분명히 있다. 죽창부대, 새총부대, 화염병 부대, 시너 부대들도 분명히 있다. 이들이 말하자면 좌쪽 극단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과연 그 반대쪽 극단-예컨대 나치스, 파시스트, 네오 나치스트, 쿠 클룩스 클랜(Ku Kluks Klan), 남미 군사정권하의 민간 살인부대(death squad) 같은 우익 극단주의 그룹이 정말 있는가? 없다. 극좌에서는 그렇지 않은 부류의 우파 단체들까지 일괄 매국노, 친일파, 극우, 파쇼, 반민족으로 낙인찍지만, 그런 단체들은 강력한 신념과 투지로 무장한 열렬한 대한민국 정체성 수호 단체, 다시 말해 피가 뜨거운 민주 헌법 수호 단체이지, 자유 민주 헌법을 깨자는 식의 나치스적, 파시스트적 단체가 아니다. 행동과 열정이 강해 보인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이 자유민주를 떠난 극단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때 우리 사회에도 ''극우''라고 불릴 수 있는 현상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군사권위주의하의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한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그 하나로 꼽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룩된 오늘 날에는 다시는 그런 시절이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두고 '독재'라고 말하지만, 그 정부의 문제점을 리더십 부족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독재'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래서 오늘의 한국 정치에는 국가차원, 헌법 차원, 정당 사회단체 차원, 우파운동 차원에 나치스, 파시스트, 군벌, 테러리스트 類의 극우는 없다. 그런데도 꼭 '양극단'이라고 설정하고서 "그러니까 중도를 해야..."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다분히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그리고 극좌의 우박을 피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설정해 놓는 일종의 문장작성상의 알리바이거나 보험증서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대학교수도 "反인권적 보수'를 멀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보수는 이미 옛날 이야기다. 그런 습성을 가진 보수를 요즘도 어디서 목격하고서 그런 말을 했다면 알려 주기 바란다. 필자도 함께 비판할 용의가 있으니까.

    이 연장선상에서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중도란 중도주의를 독점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도를 좁게 잡으면 "내가 정치지형의 가장 중간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중도라고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도를 넓게 잡으면 파시스트와 볼셰비키를 제외한 민주적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제3의 길, 민주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모두가 다 정책적인 차이를 두고서 중도민주주의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이런 폭넓은 중도의 정치지형을 제도화 한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유일하다. 김정일 체제에서는 보수도, 중도도 진보도 성립할 수 없다. 그저 수령절대주의에 대한 신앙적 절대복종만이 있을 뿐-' 그래서 중도는 대한민국 헌법 안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는 것, 대한민국 헌법체제가 곧 광의의 非극단적, 중도적 민주주의라는 것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한쪽 극단은 조직적인 모습으로 엄존하지만, 다른 한 쪽 극단으로 꼽히는 쪽은 작위적으로 설정되고 씌워진 성격을 안고 있다. 진짜 본격 극좌 집단은 있지만 진짜 본격 극우 세력은 없다. 그저 "저 놈들이 극우, 수구, 냉전, 사대 매국노, 꼴통, 친일파들이다"라고 설정되고 색칠해지고 낙인된 마네킹 극우만 있을 뿐. 설령 개인에 따라 '남보다 특별히 더 보수적인' 인물은 있을 수 있더라도, 그가 반드시 극우로 불릴 충분조건을 다 갖춘 경우는 아닌 사례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철학적 중용, 빈민중시 정책을 말하는 의미의 중도를 굳이 배척할 생각은 없다. 다만, 중도를 논하면서 "중도'라고 말하는 자기들만이 중도라고 자임하는 나머지. 다른 非극단주의자들마저 일괄 極이라고 포장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은 민주헌정 자체가 反극단, 중도다. 그 헌정을 존중하고 그 틀을 진정성 있게 존중하는  정파들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다 중도적(민주적) 보수, 중도적(민주적) 진보라는 공통된 가치를 나누어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그룹의 중도실험이 성공하려면, 우선 중도에 대한 정확한 개념정리부터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