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어제 두 가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
    60 가량 된 부인이 딸네 집에 들렀다. 강남에서 잘 사는 30대 딸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너 울었니? 왜?"
    무슨 큰 변이나 당한 줄 알고 다급하게 물었다. 알고 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부인은 너무 놀랐다.
    "너 내 딸 맞아?"
    부인의 동창생의 부군에게서 전화를 통해 들은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
    70을 넘긴 아버지에게 40대 초반의 둘째 아들이 찾아 왔다. 대기업에서 연봉 1억 가까이 버는 아들이었다. 둘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화제에 올랐다. 아버지는 초풍을 할 지경이었다. 노무현 시대를 말하는 아들이 너무 '남'이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가시돋힌 설전을 벌였다." "아버지는 평생에 그런 흠 없어요?" "너 외제차까지 몰고 다니면서…. 그러려거던 다신 오지 말아라."

    그러면서 그 70대는 마주 앉은 동창생인 필자에게 말하는 거였다.
    "요즘 부자간 대화가 이렇게 끊어지는 집안이 많다던데…."
    그래서 물었다.
    "그 애들이 그러는 까닭이 뭘까?"
    그의 대답은 딱 한 마디,
    "아이들이 '수직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으로 완전히 바뀌었어, 노무현이 '수평적인 것' '서민적인 것'을 대변했다, 이런 식이야"
    필자가 그의 해석에 토를 달았다. "일종의 일지매 예찬, 홍길동 예찬, 임꺽정 예찬 같은 것이구먼."

    그들, 고소득 '義賊(bandidos) 예찬' 세대(이를 두고 강남 좌파, 오렌지 좌파라고 했던가?)는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결코 '민중적'이지 않은 부르주아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지, 대한민국 61년사의 주류 세력을 무차별 '수구꼴통'이라 매도하면서 스스로 '나도 진보'라고 자임하는 모양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그간의 한국 주류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좋지 않은 인상이 이토록 오래 동안 지워지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수평적 민중주의' 세력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그렇다면 백설처럼 희고 깨끗했는가? 이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전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그들의 그런 정서의 배경을 전적으로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舊주류에도 '부정부패' 사례들이 있는가 하면 훌륭한 사례들도 많고, '수평적 민중주의'에도 淸水만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구정물도 함께 흐른다고 보는 것이 더 온당할 것 같은데, 그들의 견해는 어떤지?

    수직적 엘리트주의는 네이션 빌딩 초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다가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래서 '수평적 민중주의'가 湧出했다. 그것 역시 민주화 과정에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노무현이 자결할 정도로 그것 또한 부작용을 동반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전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는 구차한 산술을 하기보다는, 엘리트주의와 민중주의 각각의 부작용을 체험적으로 극복하려는 성찰과 함께, 서로 묻고 함께 터득하면서 역사를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密室 속 엘리트의 타락도 지양돼야 하지만, 광장의 대중의 일탈도 지양돼야 한다. 민주헌정의 성숙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