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핏덩이 둘째 딸이 이제야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일제(日帝)가 일으킨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에 군인.군속으로 강제동원돼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유족 19명이 9일 현지에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의 아픔을 위로하며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추도제를 올렸다.

    유족들은 태평양이 보이는 자바섬 수라바야(Surabaya) 지역의 북쪽 바닷가를 찾아 제사상을 차렸다.

    먼저 간 가족들이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이역만리 고향 땅에 조금이라도 더 근접하려는 생각에서다.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의 생사를 알 길이 없어 집에서도 한 번 차리지 못한 제사상이었다.

    생전 처음 밟은 땅에서 제사를 지내는 유족들의 얼굴엔 60여 년 세월의 허망함과 그리움, 서러움이 교차해 묻어났다. 

    희생자들에 대한 짧은 묵념이 끝나고 한ㆍ일 정부 대표의 추도사 낭독이 이어지자 유족들의 눈에선 마른 눈물이 흐르고, 입술 사이로 그리운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핏덩이 둘째 딸이 이제야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아내 잃은 지 3일 만에 젖도 떼지 않은 어린 딸과 노부모를 남겨두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끌려 오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너무나 눈물이 납니다."

    유족 대표로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던 이천세자(66.여.광주 서구)씨는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듯 일렁이는 바닷가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수십 년간 꾹꾹 참아온 설움을 쏟아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남겨둔 70대 어르신들은 20대의 꽃 같은 나이에 타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게 술잔을 올리며 가슴속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한을 한올 한올 풀어냈다.

    "아버지~ 아버지~ 이 더운 곳에서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고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술잔을 쥔 두 손은 흐느낌에 떨렸고 가족 잃은 슬픔은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채 파도 소리에 묻혔다.
    추도제에 참석한 현지 교민 10여 명도 차분한 표정으로 헌화하며 전쟁 속에 희생된 조상의 넋을 위로했다.

    추도제를 마친 뒤 유족 한 명이 `일제강제동원한국인희생자'라고 적힌 지방문(紙榜文)을 불살랐다.
    한 줌의 미련도 없이 저세상에서 자유롭게 안식을 찾길 바라는 유족들의 염원대로 `강제동원이 남긴 아픔'이 재가 되어 공중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듯했다.

    그리울 때 한 번씩 품 안에서 꺼내 보던 흑백 사진 속의 아버지는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수라바야<인도네시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