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가까스로 국회 원구성 합의를 마치고 한나라당 의원들 앞에선 홍준표 원내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면목이 없다"는 말을 연거푸 하며 소속 의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82일간의 국회 공전을 마무리 했지만 홍 원내대표는 이번 협상을 통해 리더십에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 원내대표이 협상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 원구성 타결 뒤에도 표정이 밝지 못했다. 기자들 질문에도 좀처럼 답변을 하지 않았고 고개만 숙인 채 협상장을 빠져나와 곧바로 자당 의원총회장으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홍 원내대표로선 이후 당내 반응은 물론 청와대의 입장에 더 신경을 써야할 판이다. 홍 원내대표 스스로 "우리가 양보하기는 했다"고 말할 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협상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도 "너무 많이 양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발목을 잡았던 가축법 개정 문제의 경우 청와대에선 이번 합의 내용에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린 3당 교섭단체(한나라당, 민주당, 선진과 창조의 모임) 회동 중간중간에도 홍 원내대표는 청와대로 부터 수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는 이날마저 합의가 결렬될 경우 떠안을 비판여론을 감안해 청와대 입장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회 정상화 합의에도 불구하고 홍 원내대표의 발걸음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당장 20일 홍 원내대표는 자당 지도부 및 당직자들과 함께 청와대 만찬에 참석할 텐데 이 자리에서 원구성 합의 결과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불만족스런 반응이 노출된다면 홍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다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당내 친이계 의원들의 반발도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홍 원내대표는 인사말에서 이번 협상이 어려웠음을 역설했다. 홍 원내대표는 "금년 원구성이 다른 해 보다 어려운 것은 대선에서 우리가 압승하고, 총선에서 압승하다 보니 소위 진보정권 진영에서 국회 운영에 뜻이 없다. 83석을 갖고 국회에 들어와 본들 할일이 없다고 판단해 밖에서 돌며 힘들게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러분이 '양보를 너무 많이 한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을 하는 것도 알고 있는데 국회에서 여야 협상은 여당이 양보를 하는 과정이다. 얼마만큼 양보를 덜 하느냐 하는 것이 여당의 협상 자세"라고 강조했다.

    원구성 합의 내용과 문제가 됐던 가축법 개정 합의 내용을 설명한 뒤 홍 원내대표는 다시 "정말 의원님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했다. "국민에게도 면목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원구성 협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인줄 몰랐다"고도 털어놨다. 그는 "합의안이 조율됐다 싶으면 민주당이 그 이튿날 협상장에 들어오면서 합의를 깨뜨린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서명전까지는 믿기가 어렵다"며 민주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는 여당이 야당과의 협상에서 양보를 할 때 이명박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고 역설하며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소속 의원들의 양해를 구했다. 그는 "우리가 양보하기는 했다. 그러나 여당이 끊임없이 양보하면서 야당을 데리고 가야 성공한 이명박 정부가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DJ, 노무현 정부는 10년 동안 한나라당을 정당으로 취급 안했다. DJ 정권 5년동안 한나라당 의원 38명을 빼가 DJ 정권 내내 극렬한 투쟁만 있었고, DJ 정부도 막판 식물 정부가 됐다. 또 노무현 정부가 들어와 다수로 밀어붙이며 한나라당을 '차떼기 정당' '수구꼴통 정당'으로 몰아붙이면서 5년 내내 한나라당과 싸우다 퇴임했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나는 여당 원내대표가 된 뒤 그 좌파 정권 10년 동안 야당과의 싸움을 한 것이 국력소모이며 낭비라 봤고 그래서 의원들의 참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양보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 그러나 "우리가 내주지 말아야 할 것을 양보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