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어떤 선택을 할 지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1일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3개지의 공동사설에서 핵 문제나 대미관계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것과 관련, 정부 고위소식통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12월초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부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 '충분하고도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촉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한이 새해 들어서도 '고심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시각이다.

    사설에 `핵'이 언급된 부분은 단 한 군데로, "우리는 주체의 사상론을 보검으로 틀어쥐고 핵무기보다 더 강한 천만군민의 정신력을 최대로 발양시키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한다"는 대목이 있지만 이를 핵무기 포기를 위한 선행조치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근거가 약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인 듯하다. 

    오히려 10.3합의의 시한(12월31일)을 넘긴 데 대해 북한이 특별한 반응을 피력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북한이 일단 현 상황을 유보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북한이 최근 미국 등에 보내고 있는 신호도 복합적이다. 북한은 일단 11개항의 불능화 작업에는 비교적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술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폐연료봉 제거작업을 빼고는 나머지 작업은 대부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불능화에 상응해서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경제.에너지 지원이 늦어지면서 북한이 잇따라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는게 북핵 외교가의 분위기다.

    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이 최근 경제적 보상이 늦어져 불능화 속도를 조정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북측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에 투입된 자국 인력을 일부 감축하고 이를 미국 등에 통보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12월31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현재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위해 200여명의 인력이 투입돼 작업을 하고 있으며 연말 연시를 맞아 일부 인력이 작업에서 교체되는 등 움직임이 많다"면서 "따라서 외신 보도의 내용을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진정 협상판을 깨려 한다면 외무성 대변인 논평 등을 통해 공식으로 발표를 할 것"이라면서 "따라서 주로 외국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오는 소식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핵 프로그램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을 감안할 때 불능화 부분에서 북한이 잇따라 '묘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심상치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자칫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10.3합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핵 프로그램 신고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를 신고서에 담을 지 여부를 놓고 북.미가 여전히 팽팽히 맞서면서 특별한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성실한 신고를 촉구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친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되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잇따라 방북,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설득을 거듭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어진 성 김 미국 국무부 과장의 방북과 평양에서 열린 남북.중 3자 대북 설비지원 실무 접촉에서도 신고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고 당국자들은 전했다.

    결국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신고 문제를 놓고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지를 엿볼 수 있는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북한도 신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반증이라는게 정부 당국자들의 시각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폐연료봉 제거가 끝나가는 2월말께 북한이 외부에서 알 수 있는 행동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2월16일), 한국 새 정부 출범(2월25일), 뉴욕필 평양공연(2월 26일) 등 주요한 일정이 잇따라 예정돼있기 때문에 이 즈음에 북한이 신고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1월 중순 비공식 6자 수석대표회담이 열릴 경우 북한의 선택을 촉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