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출마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 대통령 후보 지지율은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경선효과로 20%대 까지 올랐던 지지율이 반토막 난 것이다.

    정 후보 측은 겉으론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지만 속으론 '당혹스럽다'는 분위기가 크다. "10월 말 지지율 30%를 확보하고 12월 대역전을 만들어 내자"(10월 15일 정동영 후보 당선 뒤 인사말에서)고 소리치던 오충일 대표는 6일 취재진의 질문에 손사래를 친 뒤 고개를 숙였다. 이 전 총재 출마 관련 질문을 던지자 "시험보고 싶지 않아"라고만 했다.

    재차 질문을 던지자 "환영하지 뭐..."라고 말을 꺼냈다. '이 전 총재 등장 이후 정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졌는데 환영할 상황이라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지지율이 이대로 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지지율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후보의 지지율이 왜 떨어지고 있는지, 다시 끌어올릴 방안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보자"며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오 대표는 피곤한 듯 책상위에 엎드렸다. 오 대표를 만난 곳은 '17대 대선승리를 위한 국회의원 및 중앙선대위 워크숍'자리였다. 서울 올림픽컨벤션센터에서 열렸는데 통합신당이 워크숍을 개최한 이유는 이 전 총재 출마로 급변한 대선지형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 대선전략의 수정을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침체된 당 분위기를 반영하듯 참석한 의원들은 80여명에 그쳤다. 

    참석한 의원들에게 이 전 총재에 관한 질문을 동일하게 던져봤다. 같은 질문을 받은 의원들은 한결같이 한숨부터 내쉬었다. "도대체 이회창씨 지지율이 왜 오르는 거야"(김희선 의원)라는 반응부터 "우리도 고민이다"(김부겸 의원) "좀 두고 봅시다"(민병두) 등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직 '이회창 변수'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못했다고 한다.

    일단 대선지형의 급변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란 분석이 많았으나 분석 보다는 기대하는 분위기가 컸다. 김부겸 의원은 "3등이 말이 되냐"고 반문한 뒤 "이게 유권자의 트렌드 인지, 아니면 우리가 캠페인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인지 분석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금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정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

    전략기획을 담당하는 민병두 의원은 "좀 두고 봅시다"라고 말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상세하게 답변해준다는 평을 듣는 민 의원은 이날 평소와 달리 말을 아꼈다. 표정도 밝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민 의원을 향해 "전략기획 어떻게 하는거야"라며 뼈있는 농을 던지기도 했고 이런 주변 분위기에 민 의원은 멋쩍은 듯 한 표정을 지은 뒤 고개를 돌렸다.

    민 의원에게 '현재 발표되는 여론조사에 문제가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당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지지율 상승 이유와 정 후보의 하락원인을 묻자 "지금은 조정 국면이니까 좀 더 지켜보자"며 더 이상의 답변은 하지 않았다. 다른 의원들 대다수가 이 전 총재 등장으로 정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데 대해 '난감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총재의 지지율 상승이 지속되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민 의원 말처럼 "조정국면일 것"이란 게 통합신당 의원들의 전망이다. 염동연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의 지지율 상승은 일주일"이라면서 "그 뒤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염 의원은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는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동시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도 "30%대 중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수진영의 전열이 정비돼야 정 후보의 지지율도 상승할 공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 후보가 이런 외부변수 속에서 더 이상의 지지율 하락을 막고 자력으로 상승할 동력을 만들 수 있을지 여부다. 선거대책위 역시 정 후보가 자력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이회창 출마' '김경준 귀국' 등의 외부변수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뚜렷한 해법은 없다는 게 통합신당 측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인사말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오 대표는 참석자들에게 "오직 정동영 분신으로 살겠다는 각오를 다져달라"고 주문했다. 정 후보의 지지율 하락과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당 분위기마저 침체되고 있는 데 대한 우려에서다. 오 대표는 "중앙선대위에 의존하지 말고 각자 지역 유권자에 맞는 효과적인 선거방식을 스스로 개발해 달라"고도 했다.

    공동선대위원장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싫은 소리 좀 하겠다"면서 "(선거운동을) 이렇게 하면 선거 안 된다. 최소한 워크숍을 하려면 가족행복위원회에서 썼던 플래카드나 유니폼을 준비하고 (워크숍 분위기를) 만들어야지 의원총회인지 뭔지 모르겠다"고 지적한 뒤 "그래야 감동을 줄 수 있고 다시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도 이 전 총재의 출마를 언급하면서 "어쩌면 정치 공학적으로는 유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잘못 대응하면 이 상황이 (우리에게)암담할 수 있다고 우려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