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연합통신 편집국장을 지낸 서옥식 성결대 교수(정치학 박사)가 보내온 글입니다.>

    북한의 인민, 인민주권, 인민민주의

    1. 들어가며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간 중 공산주의 혁명용어인 ‘인민’이란 말을 사용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공연을 관람하는가하면. 수백만 북한주민을 굶겨 죽인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고 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하면서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노대통령은 또 서해갑문을 시찰하는 자리에서는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쓴 뒤 “박수 한번 쳐 달라”고 했다.  북한이 주최한 만찬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오래 사셔야  인민이 편안해 진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언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며 두 번의 기립박수를 보냈다. 첫 번째는 2장 선군(先軍)아리랑이 끝나갈 무렵, 아동들이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는 구호를 외치고, 관람석에 역시 똑같은 글귀의 구호가 만들어졌을 때다. 또 한 차례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압록강 구비 구비 피어린 자국...’으로 시작되는  김일성 장군  찬양가가 흘러나오면서, <21세기 태양은 누리를 밝힌다. 아, 김일성 장군>이라는 구호가 <무궁 번영하라, 김일성 조선이여>라는 구호로 바뀌었을 때다.

    노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해명’에 나서 “인민은 서구 사회의 ‘피플’(people)을 번역한 것일 뿐이며 학술적으로도 이 표현을 많이 쓴다”고 했다.

    소위 진보적인 식자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일제히 노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섰다.

    물론 인민이란 용어는 영어의 ‘people’을 근대적인 의미로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people’은 ‘시민’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populus’에서 유래됐다. 반면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국민’은 ‘nation’의 의미에 가깝다. ‘nation’은 ‘민족’, ‘국가’(주권국가)의 뜻도 가지고 있다. 원래 ‘nation’ 은 베스트팔렌(Westfalen)조약에 의해 탄생된 유럽의 ‘근대 민족 국가’ 개념이다. ‘국민’이 국가의 구성원에 중점을 둔 용어라면 ‘인민’은  개개의 권리주체로서의 자연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제헌헌법 기초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헌법학자 유진오 박사는 그의 비망록에서 ‘국민’ 은 ‘국가 구성원’ 이라는 뜻으로 국가우월주의 냄새가 나지만, ‘인민’ 은 ‘국가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를 의미한다면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인민이란 용어를 ‘선점’한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낸 적이 있다. 실제 1948년 대한민국 제헌헌법 초안은 모두 ‘인민’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즉 헌법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돼있었다. 당시 국회속기록에 따르면  ‘인민’이란  용어 때문에 윤치영 의원과 조봉암 의원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졌다. 윤의원은 “ ‘인민’ 이라는 말은 공산당 용어인데 어째서 그런 말을 쓰느냐”고  색깔론을 제기했고 이에 조의원은 ‘인민’ 은 공산권국가는 물론 미국, 프랑스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사용하는 보편적인 개념인데도 단지 북한이 쓰니까 기피하자는 것은 고루한 편견일 뿐” 이라며 공격했다. 그러나 조의원의 반격은 역부족이었고 의원들은 결국  ‘국민’ 을 선택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도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정부...”로 번역하는 것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로 번역하는 것보다 나아 보인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의미를 가지려면 ‘people’ 보다는 ‘nation’이 더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식자들은 ‘인민’이란 말이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사용돼온 가치중립적인 용어라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인민’이란 단어가 ‘국민’보다 더 많이 발견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우리의 ‘국민’이나 ‘백성’과 비슷한 의미로 북한에서 사용되는 말이 ‘인민’인데도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그 자체가 무지의 소치이며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인민’이란 말을 단지 북한에서 쓰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면 이야말로 ‘냉전수구적 발상’이라고 매도한다. 이들은 특히 ‘인민’이란 용어는 ‘국민’보다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개념인데도 일부 몰지각한 언론이 노대통령에게  딴지를 걸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펴는 사람들이야 말로 오히려 편견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라고 비난을 받을 만하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온갖 자유와 부를 누리면서도 좌익논리에 심취돼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용어들을 거침없이 사용하며 대중을 선동한다. 북한은 용어 하나하나에도 혁명성을 불어넣어 대남 통일전선전략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민족’ ‘자주’ ‘평화’ 등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도 북한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민족’은 보편적인 ‘문화공동체’가 아니라 김일성-김정일의 사상(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이념공동체’,  ‘자주’는 ‘당사자주의 원칙’이 아닌 ‘외세배격’,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지구상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 소멸된 상태’를 의미한다.

    ‘인민’이란 용어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백성’이나 ‘시민’의 의미가 아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이나 백과사전, 철학사전, 정치사전에 올라있는 ‘인민’이란 이념적, 계급적 용어다. 인민은 수령과 당의 영도로 움직이는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이다. 폭력혁명을 통해 지구상에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왕국을 세우는 전위조직이다. 이처럼  ‘인민’이란 말 속에는 공포와 전율을 느낄 무시무시한 이념이 담겨 있다.

    2. 인민, 그리고  인민주권

    흔히 공산 체제에서는 인민과  인민주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민과 국민주권을 얘기한다. 국민주권은 모든 국민이 주권자라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론이지만 인민주권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즉 무산자(無産者)만 주권을 갖는다는 공산주의 주권이론이다.

    이처럼 인민이란 우리의 ‘국민’이나 ‘백성’과는 다른 이념적 용어이다. 인민이란 용어는 북한에서 ‘인민대중’, ‘근로인민대중’과 동일 의미로 쓰이고 있다. 1992년 평양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서 펴낸  ‘조선말대사전’(1699쪽)에 의하면 인민이란 <나라를 이루고 사회와 력사(역사)를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주체로 되는 사람들>이라면서 <혁명의 대상을 제외하고 로동자 ․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다 포괄된다>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혁명이란 무산계급 즉, 프롤레타리아가 폭력혁명을 통해 유산계급 즉, 부르주아를 타도하고 성취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혁명을 말하며 혁명의 대상이란 자본가 ․ 기업가 ․ 지주 등을 가리킨다. 조선말대사전은 ‘인민대중’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사전은 ‘인민대중’에 대해 <역사의 주체, 사회적 운동의 주체로 되는 모든 계급과 계층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면서 <인민대중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본 요인이다. 역사는 인민대중에 의해 창조되며 모든 물질적 및 정신적 부(富)도 인민대중에 의해 창조된다. 인민대중은 역사의 창조자이며 사회발전을 추동하는 힘 있는 요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대백과사전(제28권,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1)과 철학사전(평양: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1985)에도 비숫한 뜻이 담겨있다. 이들 사전의 내용을 종합하면 인민, 즉 인민대중은 사회적 운동과 역사의 주체, 혁명의 주인이다. 그러나 인민이 그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위해서는 수령과 당의 현명한 영도를 받아야하며 또한 수령과 당에 끝없이 충성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 한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오류성(無誤謬性)의 수령으로부터 영도를 받아야 한다”는 주체사상의 ‘논리’와 일치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민’이란 용어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계급적 시각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그들은 사람을 인민(人民)과 비인민(非人民)을 나눈다. 노동자․농민․근로지식인은 인민으로 ‘혁명의 주체’이고, 자본가․기업가․지주․은행원․귀족․성직자는 비인민으로 ‘혁명의 대상’이다.

    우리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데 반해 북한이 그들의 민주주의를 인민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의 민주주의가 인민, 즉 무산자의 이름으로 착취계급 타도를 위한 ‘폭력혁명’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민민주주의란 가진 자는 모두 때려잡자는 것이다. 즉 노동자 ․ 농민 중심의 프롤레타리아가 폭력혁명을 통해 부르주아(유산자)를 때려잡은 후 도래하는 마지막 이상사회인 공산주의 실시 전단계가 인민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인민민주주의 사상은 공산주의 시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런던에서 발표한 그 유명한 ‘공산당선언’(Manifesto of Communist party)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의 모든 사회적 조건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The Communists disdain to conceal their views and aims. They openly declare that their ends can be attained only by the forcible overthrow of all existing social conditions. Let the ruling classes tremble at a Communistic revolution. The proletarians have nothing to lose but their chains. They have a world to win. 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

    이상은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대목이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공산혁명을 주장하면서 폭력의 사용을 선동하고 있다.

    3. 인민민주주의 혁명과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

    원래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동유럽 위성국에 소개한 불안전한 형태의 공산주의이다. 즉. 제2차대전 뒤, 폴란드․동독․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알바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 아시아의 북한․중국․베트남 등에서 반파시즘 내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을 통해 통일전선조직에 기초한 민주주의 변혁의 결과로 성립한 정치체제나 그 이념을 가리킨다. 따라서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은 정상적인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못한 후진국 또는 식민지국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당장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없는 주관적 ․ 객관적 조건을 배경으로 ‘민족해방 ․ 계급해방 혁명’을 이행하려는 공산화 혁명 방법을 의미한다.

    이는 레닌의 ‘식민지민족해방론’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으며, 제2차 대전 후 동유럽 공산화 과정에 적용되었다. 그 본질은 공산주의로 가기 직전단계의 친공산적 민족주의라는 의미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북한이 내세운 민족해방 ․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은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의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전복시킨 다음에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인민정권을 수립한 후, 북한과 합작하여 연방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북한과 국내외 좌파세력들은 우리 국민이 ‘인민’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갖고 있는 거부감을 고려하여 인민, 인민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피하고 People과 People‘s Democracy를 각각 ‘민중’과 ‘민중민주주의’라는 덜 자극적 용어로 번역하여 사용하면서 남한에 민중민주주의 정권을 세울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내 좌파중 NL(National Liberation) 주사파는  북한의 대남 혁명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NLPDR: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cy Revolution)중 ‘인민’을 ‘민중’으로 말만 바꾸어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는 코민테른 강령에서 제시된 후진국형 공산혁명 전략인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을 원용한 것이다. 이 혁명론은 먼저 노동자계급, 농민, 청년학생 및 진보적 지식인을 주력군으로 하고 반동관료 및 매판 자본가를 제외한 각계각층의 민중을 보조역량으로 하여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먼저 미제(美帝)를 축출하고 현 정권(파쇼)을 타도한 다음 용공정권인 민족자주정권을 세우고(1단계 NLPDR 완수), 이어 북한과의 합작(연방제 통일 등)을 한 다음  “사적(私的)소유 철폐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권력 수립”을 내용으로 하는 본격적인 사회주의 혁명(2단계 Socialism 완수)을 진행하는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민중권력은  ‘인민정권’을 의미한다. 즉 사회주의로 가는 과도정치체제인 ‘인민(민중)민주주의’의 정치권력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가 및 현 정권을 타도하고 노동자 계급 주도로 각계각층의 민중이 참여하는 과도적 정치권력체를 말한다.


    4.공산주의자들의 인민-비인민 구분

    오스트리아 태생의 철학자 포퍼(Karl Popper)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Princeton Univ. Press, 1971)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은 인류의 주요문제를 푸는 데 서로 협력할 ‘동반자’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enemy)’을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타도되어야 할 적으로 자본주의를 지목했다. 그리고 적을 타도할 주력군으로 노동자를 설정했다. 그들은 ‘책임’ 대신 ‘증오’를 선택했다. 이는 처음부터 커다란 오류였다. 

    원래 편 가르기는 공산주의 혁명의식의 출발점이다. 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이라고 보는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 정신이 1차적이고 물질이 2차적이라고 보는 관념론(觀念論, idealism)이 서로 대립돼 있는 것으로 인간과 우주를 설명함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동무가 아니면 모두가 원수’로 보는 절대적 세계관을 내세우면서 자유민주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헛된 관념론자들이기 때문에 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교의(敎義)에 따라 일찍이 그의 ‘제자들’인 레닌․트로츠키․스탈린․모택동․ 김일성 등은 혁명을 진행하면서 한결같이 사회 성원 전체를 인민 대 비인민으로 철저히 2분했다. ‘인민’들 사이에만 동지적 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를 실시하고 ‘비인민’들에게는 적대적 독재를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혁명집단 북한도 세계를 미국에 대한 반제(反帝)투쟁으로 2분하고 미제(美帝)쪽에 선 것은 모조리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가 트로츠키(Leon Trotsky)는 영국에 첫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1925년에 펴낸 <영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Where Is Britain Going? London: Socialist Labour League, 1960)>에서 “먼저 적을 만들어라”라고 노동자를 선동한다. 그는 사회주의 선동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사회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자본가와 노동자, 유산자와 무산자로 양분해 적을 만들고 끊임없이 적개심을 유발하라고 주문한다. 노동자계급은 산업사회에서 중심역할을 담당하지만 부르주아계급의 박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투쟁의 선봉에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격려한다. 트로츠키가 적으로 모는 집단은 부르주아로 통칭되지만 자본가, 지주계급, 기업가, 은행가, 왕족, 귀족, 성직자 등 출신성분이나 직업을 기준으로 구체화된다. 트로츠키가 사회구성원을 적과 동지로 양분하는 이유는,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여 적개심에 불타고 있어야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투쟁 할 때는 혁명을 방해하는 반동세력과 맞서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의 각오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며(life and death fight)’ 타협의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트로츠키는 그의 책 여러 곳에서 부르주아와 노동계급간의 투쟁에는 목숨과 죽음이 걸려 있다는 자극적인 표현, 예를 들면 struggle to the death, fight to the death, struggle for life or death, question of life or death 등을  사용하고 있다.

    5. 북한이 말하는‘사람’의  정의, 그리고  인간관 ․ 세계관 ․ 역사관

    이러한 인민민주주의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왜곡된 인간관․역사관․세계관과 긴밀히 연관돼있다.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의 세계관․역사관․인간관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통치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만들어 낸  주체사상에 잘 나타나 있다.

    주체사상의 주요 명제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 한다”것이다.   북한 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역사)연구소가 1991년 펴낸 ‘조선로동당력사’(p.474)에 따르면 주체사상은  ①철학적 원리 ②사회역사원리 ③철학적 원리를 주 내용으로 하는 전일적인 사상이론 체계다. 철학적 원리는 먼저 주체사상이 사람중심의 새로운 철학임을 선언한 다음 사람의 속성으로 자주성 ․ 창조성 ․ 의식성 등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북한은 이 같은 인간의 속성을 사상 처음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이 밝힘으로써 사람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조선대백과사전 제12권,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1999, pp.576-577). 자주성이란 개인이 전체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부응하는 것을 말하고, 창조성이란 집단의 목적의식과 맞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며, 의식성이란 개인의 목적 ․ 발전방향 등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①인민대중(노동자․농민․근로인텔리)은 역사발전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체이다 ②인류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③사회역사적 운동은 인민대중의 창조적 운동이다 ④혁명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 등 네 가지 명제로 집약된다.

    사람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기준에 따라 ‘정의’(definition)가 달라 질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사람은 모든 동물 중에서도 가장 진화한 영장류(primate)에 속하며 영장류 중에서 지능이 최고도로 발달하고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 사회학적으로 보면 조직사회를 이루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활하는 동물, 정신적으로는 이성과 사유를 가진 존재, 법률학적으로 보면 권리와 의무의 주체, 종교적으로 보면 피조물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니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북한의 문헌도 ‘인간’의 이 같은 정의를 수록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와 확연이 구분되는 것이 한 두가지 있다. 그것은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노동으로, 물질적 생산을 통해 세계를 만드는 존재로 보았다. 즉 인간은 노동이라는 자기 창조적 활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해 가는 존재, 줄여 말하면 ‘노동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은 원숭이(물질)나 같은 존재로, 죽여 없애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 공산주의 이론이다. 북한이 근로인민대중 즉, 노동자와 농민을 중시 여기고 이들을 역사의 주체, 혁명의 주체로 보는 것은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세계관은 그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최고 이상인 공산주의 위업실현’에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는 착취계급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만큼 폭력혁명을 통해 착취사회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역사를 자주성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로 간주하고, 인민대중이 이러한 세계와 역사를 바꾸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급사회에서의 인간생활은 생산수단의 사적(私的)소유와 거기에서 생기는 착취자와 피착취자간의 적대적인 계급으로 분열된다. 이때 인간은 계급적 개인이고 소외된 개인이다. 따라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사람의 본질을 착취계급의 이해관계에 맞게 왜곡하는, 즉 착취사회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6.인민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사지(四肢)

    북한은 이 같은 주장을 더욱 발전시켜 육체적 생명을 갖는 인간을 사회정치적 생명을 갖는 이른바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논리의 핵심은 수령을 어버이로, 조선로동당을 어머니로, 인민대중을 자식으로 하여 이 3자의 혈연적 관계에 기초해 ‘혁명적 대가족’을 이루자는 것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1973년 <근로자> 제8호의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고귀한 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이다>를 통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또한 1974년 김정일이 발표한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서도 ‘정치적 생명’이라는 용어로 언급되었다. 이후 1982년과 1986년 김정일이 발표한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와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하나의 이론적 틀을 형성해 나갔다. 이후 현재까지 혁명적 수령관, 후계자론과 함께 김정일의 절대권위 등 북한의 유일지배체제를 정당화시키는 이론적 체계로 강조되고 있다.

    이 이론에서 인민대중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담당자가 되고, 조선로동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추가 되며,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가 된다. 인민대중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추인 당의 영도 밑에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인 수령을 중심으로 결속될 때, 영생하는 자주적인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유기체의 여러 부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리적인 요구가 뇌수에 반영되고 뇌수는 그 요구를 실현하도록 유기체의 각 부분에 지령을 주는 것처럼, 수령은 인민대중의 의사와 요구를 집대성하고 그것을 정확히 반영하여 인민대중이 자기의 의사와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과 방도를 제시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수령은 혁명의 수뇌부, 당은 혁명의 참모부, 인민대중은 혁명의 동력(動力)으로서의 역할을  분담한다.  김정일은 이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통해 수령 ․ 당 ․ 대중의 통일체가 혁명의 주체이며, 인민대중은 수령과 당의 올바른 지도를 받을 때에만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로 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주체사상을 ‘사람중심의 철학’에서 ‘수령 중심의 철학’으로 변질시켰다. 즉, 주체사상의 제1명제는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이고, 제2명제는 사람 중에서도 근로인민대중(노동자․농민․근로인테리)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이며, 제3명제는 수령의 영도를 받는 근로인민대중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체사상에서의 ‘사람’이란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북한의 속성상 ‘개인(individual)’이 아닌 ‘대중(the mass)’을 뜻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7.북한의 인민주권 헌법과 입헌성 문제

    노대통령은 만수대의사당을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으로 묘사했다. 과연 그런가.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은 단독후보에 !00%의 투표율, 100%의 찬성률로 뽑힌다. 이들은 안건에 대한 결정권이 없으며 오로지 거수기 역할만 한다.

    느 한 나라의 기본을 알아보려면 그 나라의 헌법을 보라는 얘기가 있다. 헌법이 나라의 기본법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헌법은 그 나라의 통치조직, 통치작용의 원리를 정함과 동시에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고의 규범이다.

    그러나 인민의 범위를 노동자․농민․근로인테리 및 기타 근로인민으로 한정하고 있는 북한의 헌법은 입헌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헌법 제 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고 규정, 로동당의 초헌법적 지위와 당규약 및 수령이 내리는 교시의 최고 규범성이 헌법적으로 보장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북한헌법에서의 입헌성을 결여하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규정이다. 이 조항은 당규약의 초헌법성을 인정하여 입헌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법치주의의 원리, 즉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원천적으로 실현불가능 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한민국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법의 기능은 정의(justice), 논리(logic), 통제(control)이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동시에 이성에 입각한 논리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며, 불의와 합리적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에 대하여서는 통제를 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헌법은 입헌주의 헌법으로 국민주권, 권력분립, 법치주의, 국민 기본권 보장을 기본법으로 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북한의 헌법은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주장하는 등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을 진압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도구, 독재 실현의 도구, 그리고 공산주의 신봉자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뿐, 국민의 복지증진과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 등과는 무관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헌법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또 하나는 주체사상의 구현이다. 주체사상은 김일성 부자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도구, 즉 통치이데올로기로서 북한만이 주장하는 정치적 지표일 뿐이다.

    요컨대, 북한 헌법이 가진 특성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타도하려는 목적 외에는  ‘인민’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 어떠한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를 담고 있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전문으로 공부한 변호사 출신의 노대통령이 북한의 국회의사당을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치켜세운 데는 그 나름의 의도된 계산이 따로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8. 나오며

    1980년에 채택된 현행 북한로동당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ㆍ혁명사상에 의해서 지도”되며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돼있다.  또한  1992년 4월과 1998년 9월에 각각 수정된 현행 헌법에는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 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약하면  인민민주주의 체제의 북한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주체사상화와 적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주체헌법의 산실’인 만수대의사당의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 ‘인민주권의 전당’ 운운했다. 아무리 민족화합을 강조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리라 하지만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유일사상의 세습독재전체주의 체제, 그것도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 ‘무법정권’(outlaw regime), ‘범죄정권’(criminal regime), ‘잔인한 정권’(brutal regime)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수백만 명을 굶겨죽이고 공개처형까지 서슴지 않은 정권에 대해 ‘찬사’를 한 것이 아닌가 보여 진다..

    북한 헌법 제4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농민․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의회)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의회가 대한민국처럼 삼권분립에 기초한 주권재민의 의회이며, 체제 수호의 거수기 아닌 인민의 행복을 위한 전당이라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실망이다. 정작 글귀를 남기고 싶으면 ‘반갑습니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위하여’ 같은 것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찬장에서의 건배사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정 하고 싶으면 ‘감사합니다. 7천만 민족의 화합과 평화통일을 위하여 건배’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분단 고착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잔학무도한 아웅산묘소 폭탄테러사건, 대한항공기 858편 공중폭파테러사건의 ‘지령자’로 보도된 김정일에 대해 그런 표현을 쓰다니 대통령의 언행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장병들은 지하에서 대통령의 언행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리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속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테러사건 희생 유족들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대통령은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았는가.  

    정상회담 내용을 담은 선언문도 만족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최대 현안인 북한 핵문제와 관련, 노대통령은 김정일의 책임있는 핵폐기 약속이나 언질을 받아내지 못했다. 또한 선언문에 ‘북한 핵문제’라는 표현도 사용 못하고 ‘한반도 핵문제’라고 표현함으로써,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개념을 사실상 수용하고, 앞으로 한반도 영역에서의 미군 핵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또한 북한의 대남전략 슬로건인 ‘우리민족끼리’라는 용어를 그대로 수용, 합의문에 명시함으로써 북한의 대남전략에 일방적으로 말려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대통령은 회담장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북의 공산정권과 남의 친북좌파의 ‘연합’을 ‘민족’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민족이란 ‘김일성-김정일’ 민족이다. 비숫한 전통․언어․풍습․가치관에 바탕을 둔 ‘문화공동체’가 아니라 김부자의 사상(주체사상)을 본받고 따르는 ‘이념공동체’를 말한다.

    데니스 핼핀이라는 미하원외교위 전문위원은 2005년 10월 맥아더동상 철거소동 직후 미국에서 가진 한 세미나에서 북한에 유화적인 한국 내 상황을 ‘트로이의 목마’, 그리고 한미관계를 ‘장의사가 관을 봉하기 직전의 시신’(body before the undertaker then seals the coffin)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충고했다. 한국은 “북한을 ‘형제’라고 말하지만 인류 최초의 형제는 카인과 아벨이었고, 카인은 결국 동생을 죽였음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한 핏줄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 성서의 교훈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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