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1일자 여론면에 이 신문 성한용 선임기자가 쓴 '당신들이 그렇게 잘났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망했다. 광주·전남에서 승자는 없었다. 정동영·손학규·이해찬 세 사람 모두 패배했다. 투표율 22.6%는 광주·전남의 민심이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을 외면했다는 증거다.
     
    개표 연설을 들었다. 정동영 후보는 “광주·전남에서 정동영을 선택한 것은 이명박을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맞서라는 준엄한 민심의 명령”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손학규 후보는 “도로 열린우리당 당의장 뽑아서는 안 된다. 적당히 야당 하자는 패배주의는 안 된다”고 했다. ‘그만 하라’는 야유가 터졌다. 이해찬 후보는 “10년 만에 민주개혁세력이 정권을 뺏기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고 했다. 표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일까? 화가 나 보였다.

    세 후보는 그동안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대선 승리를 위한 광주의 전략적 선택’(손학규), ‘민주개혁세력의 아크로폴리스’(정동영), ‘의로운 도시’(이해찬)라고 치켜세웠다. 광주·전남의 선택이 연말 대선을 결정짓는다고 외쳤다. 그러나 광주·전남은 세 사람에게 등을 돌렸다.

    왜? 이유가 있다. 세 사람은 겸손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 27일 광주 토론회를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자지러지면 어떻게 하나” “참 나쁜 사람”(이해찬), “조폭사회”(정동영), “예의가 있어야 한다”(손학규)는 험한 말들이 날아다녔다. ‘민주화의 성지’에서 닭싸움을 벌인 꼴이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2000년 미국 대선 첫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가 격돌했다. 현장에서는 앨 고어가 이겼지만, 토론회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부시의 손을 들어줬다. 정치에서 품성은 능력보다 앞선다. 정치인의 주인은 유권자다. 그래서 한없이 겸손하게 다가서야 한다. 그런데 신당의 세 후보는 너무 건방지다.

    한번 따져보자. 정동영 후보는 호남의 민심이 손학규 후보를 떠나면서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 조직 선거의 덕을 크게 봤다. 그런데 자신이 민심을 얻었다며 벌써부터 후보가 된 것처럼 처신한다. 손학규 후보는 한나라당에서 3등을 하다가 탈당한 사람이다. 그동안의 행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 손학규가 필요없다는 말이냐”고 맞받아쳤다. 범여권 지지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이해찬 후보는 어찌보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최대 수혜자다. 총리와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지지자들에게 별로 고마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신이 워낙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지난 10년 동안 범여권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총리, 장관, 여당 국회의원, 공기업체 사장 및 간부가 됐다. 그런데 그들에게 표를 준 지지자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을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수많은 중산층이 빈민으로 추락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중산층과 서민’을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라고 했다. 정말 그런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다. 겸손해야 한다. 범여권 대선주자들이라면 ‘중산층과 서민’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한다.

    호남만 해도 그렇다. 광주는 정치인들의 ‘봉’이 아니다. 1980년 이래 현대사의 무거운 짐을 너무 오랫동안 지고 살았다. 이제 그 짐을 내려놓을 때도 됐다. 한 사람에게 90%씩 몰아주는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또 요구하는 것은 광주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광주의 선택이 이번에도 정권의 향배를 가를 수는 있겠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 후보는 광주에서 선두권이다. 신당 후보들이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면, 광주는 이명박을 선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