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칼럼 '손학규는 지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누구나 살면서 굴곡을 겪는다. 과거의 어려움이 현재의 복이 되는가 하면, 지금의 즐거움이 장차 화(禍)로 바뀌기도 한다. 한순간의 선택이 인생 전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 굴곡의 횟수와 진폭이 훨씬 커진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애써 모았던 정치적 자산을 몽땅 날리고 쓸쓸히 정계에서 물러나야 했던 정치인이 적지 않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가시밭길을 고집하다가 우뚝 선 정치인도 없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그런 정치인의 부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2007년 10월 1일. 대선이 두 달 반 남은 시점에서 가장 괴롭고 착잡한 정치인은 누구일까. 아마도 손학규 전 경기지사이리라. 대선의 꿈을 일찌감치 접은 고건 전 총리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경우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그다지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이미 정점에 서 봤기에 대선 참여 문제도 여분이었을 뿐이다. 약간의 따가운 눈총이 성가셨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대선 후보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 경선 승복이란 선택은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제 박근혜는 정치권에서 중심 축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손 전 지사는 이들과는 다른 입장에 처해 있다. 그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목표는 대통령이었다. 이 때문에 14년간 몸담았던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경선 불복’의 멍에도 짊어졌다. 그가 만약 한나라당에 남아 있었다면 경선 과정에서는 ‘빅3’ 후보 중 1인으로, 또 경선 막판 최대 변수로 역할을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명박과 박근혜 양쪽에서는 기꺼이 2인자 자리를 약속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한나라당에는 ‘보배’ 같은 존재였다. 한나라당에 부족한 도덕적 건강성에다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식인과 기자들은 그를 ‘대통령 적합도 1위’로 꼽았었다.

    그런 뻔히 보이는 기득권을 뿌리치고 나왔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세상에서 당 대표나 국무총리를 맡을 수는 있겠지만, 이름뿐인 2인자 노릇이나 하는 게 싫었다. 마땅한 대선 주자를 찾지 못한 범여권에서의 유혹도 한몫했다. 그래서 승부수를 띄웠다. 이번 대선에서 결판을 내려 했다. 나름대로 승산이 있다고 봤을 것이다. 민주화 투쟁 경력으로는 범여권 후보들에게 뒤질 게 없고, 경기지사 시절 보여준 능력과 업적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비견할 만하다. “YS는 군사정권 세력인 민정당과의 3당 합당을 결행해 대통령이 됐는데, 내가 제2의 YS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충분히 그런 생각을 했음 직하다.

    그러나 당을 나온 순간부터 그는 한겨울 허허벌판에서 북풍한설을 알몸으로 맞아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칙과 명분 없는 보따리 정치’라고 비아냥댔고, 잠시 탈당을 환영했던 범여권 후보들은 그를 불쏘시개로 쓰려 했다. “한나라당 경선의 들러리는 안 서겠다”며 경선 불복의 불명예조차 감수했건만 지금 그는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흥행의 들러리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그들은 손 전 지사에게 ‘한나라당 14년의 정치생활에 대한 반성’과 ‘호남에 대한 존중’을 보일 것을 요구했다. 그가 굴복하지 않자 범여권 지지자들은 점차 등을 돌렸다. 그가 신당의 경선 과정에 불만을 품고 며칠 칩거하자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고소해하고, 범여권 지지자들은 “마음대로 해보라”며 비웃고 있다. 이쪽저쪽에서 외면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손 전 지사는 요즘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는지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뼈가 시릴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경선 완주 여부와 경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하거나 내년 총선에서 재기를 노려 보는 정도의 선택만 남았다. 어떤 선택을 한다 해도 과거의 위상은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는 그처럼 냉혹하다. 때가 아니었다면 꿈을 접었어야 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