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능·태만·혼란·아마추어리즘’
    ‘노선투쟁’ 
    ‘당의장 임기 평균 4.5개월’
    ‘각종 재보선 연전연패’

    열린우리당이 내달 12일을 전후로 운명을 달리할 판이다. 범여권의 대통합 신당, 이른바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과의 합당을 위한 임시 전당대회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신당과의 흡수통합 방식의 합당이 이뤄지면 열린당은 불과 4년도 채 안 돼,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해 왔던 ‘호흡기’를 떼게 된다.

    지난 4년동안 열린당은 숱한 ‘화제’(?)를 뿌렸다. 평균 4.5개월에 한번씩 당 의장을 ‘갈아치우’는가 하면 각종 재보선에 연전연패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2004년 1월 당의장에 선출된 정동영 전 의장은 총선당시의 ‘노인폄하 발언’의 책임을 지고 4개월여만에 당의장직을 신기남 전 의장에게 승계했다. 신 전 의장은 부친의 친일의혹 문제가 터지면서 3개월여만에, 이어 이부영 전 의장은 국가보안법 등 소위 ‘4대쟁점법안’ 처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4개월여만에 의장직을 사퇴했다.

    그 다음으로는 임채정 의장(2005년 1월 5일 취임), 문희상 의장(2005년 4월 2일 전대에서 당의장에 취임) 순으로 이어지며 문 전 의장은 재보선 전패의 책임을 지고 당의장직을 사퇴했다. 이어 정세균 의장과 유재건 의장의 계속된 비상집행위원회 체제가 꾸려지고 2006년 2월 18일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정동영 전 의장이 당의장으로 선출된다. 정 전 의장이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이번엔 김근태 전 의장이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장고끝에 당의장직을 수락하게 된다.

    2003년 10월 열린당 창당준비위원회 임시의장이었던 김원기 전 의장까지 포함하면 45개월 사이에 10번 당의장이 바뀐 것이다. 평균 4.5개월로 당 의장을 한번씩 ‘갈아치우면서’(?) 지도부의 권위와 위신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이는 동시에 무능과 태만·혼란으로 이어지면서 상처를 키우는 꼴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아울러 지난 4년에 대해 열린당 내 인사 스스로도 거리낌없이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기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당 외적인 갈등 요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당 내부적으로 전개된 치열한 노선투쟁을 효과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는 회한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일부 친노진영의 한 의원은 이같은 원인을,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절대 사수할 가치로 내걸었던 기간당원제에서 기인했다고 꼽기도 한다. 기간당원제는 당내 강경파의 입지를 키워주는 꼴로 작용, 결국엔 당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당의 지향성은 기간당원제가 맞지만 성급하게 완성하려했던데서 그 부작용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열린당은 지난 4년간 숱한 ‘화제’(?)를 뿌리는 동안 정당지지율은 한자리수대로 떨어졌으며, 150여석에 달하는 의석은 어느새 1/3인 50여석으로 줄어들었다. 

    '분열과 갈등'으로 쓰디쓴 맛을 본 열린당의 ‘실험정신’은 이제 제2라운드로 접어든 양상이다. 바로 대통합 신당이라는 새 둥지에서 과거를 세탁하고 새롭게 국정운영의 기회을 잡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대통합 신당이 ‘도로열린당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도로 열린당’이 되지 않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지배적인 설명이다. 정책과 이념의 지향점없는, 대통합만을 앞세운 ‘잡탕식 대통합’은 결국 또다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운명을 달리하게 될 열린당의 전철을 밟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