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지난 2002년 12월 19일 밤. 제16대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 후보는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하빌딩 4층에서 노 당선자는 개혁당 지도부 및 관계자들을 얼싸안고 감격에 또 감격했다. 대하빌딩에 위치한 개혁당사는 노 당선자의 '정신적' 선거캠프였다.

    #장면2. 
    지난 1987년 13대 대선 직전. 당시 야당지도자 김대중(DJ)씨는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의 일부 층을 임대해 평화민주당(평민당)이라는 보금자리를 꾸렸다. 이듬해 대하빌딩 소유주는 평민당 전국구 의원이 되고 DJ는 그로부터 10년후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엔 공교롭게도 ‘웅비’를 꾀하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비롯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혁규 의원(전 경남도지사) 등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선거캠프가 이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 6층엔 정 전 의장의 대선캠프라 할 수 있는 ‘21세기 나라비전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정 전 의장은 내달 3일 대선출마선언식을 갖고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선다. 자연스럽게 나라비전연구소는 대선캠프체제로 공식 전환된다.

    이어 2006년 말엔 김두관 전 장관이 이 건물 10층에 ‘민부정책연구소’를 꾸렸다. 김 전 장관은 오는 7월 4일 이 장소에서 대선출마선언식을 갖는다. ‘민부정책연구소’ 입주 당시 김 전 장관측 관계자들은 “구 개혁당사가 있던 건물로 상징성 있는 곳”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었다.

    이들에 이어 최근에는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 전 총리와 김 의원이 각각 9층과 11층에 선거캠프를 꾸리고 올 연말 한나라당 후보와의 일대 결전을 다지고 있다.

    같은 건물을 쓰면서도 이들간에 물밑 경쟁도 한창이다. 이 전 총리와 김 전 장관, 김 의원은 서로 범여권 친노 진영의 ‘적자’임을 내세우며 한판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열린당 창당 주역으로 노무현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인 정 전 의장은 이 전 총리 등과 미묘한 지지율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져 내려오는,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계승을 피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범여권 대선예비주자들 사이에서 마치 여의도 대하빌딩을 민주정부의 ‘성지’(?)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도 나온다. 

    일단 이들의 대하빌딩 입주는 정치권과의 의견 교류, 취재진의 접근 용이성 등 입지요건을 우선적으로 감안한 것이지만, 공교롭게도 한 건물에서 '웅비'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일각에선 범여권 내 경선구도가 복잡해지고 치열해지면 한 건물에 있는게 종종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이 나오는가 하면 오히려 한 건물을 쓰는 것이 ‘적’(?)의 동태 파악에 유리한 면도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