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대통령이 문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한민국은 언론 천국 같다. 전세계 기자들이 한번만이라도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할, 기자들의 ‘유토피아(Utopia)’ 같기도 하다. 대통령이 선두에 서서 기자들의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한국 대학 졸업생의 절반 가량은 졸업과 함께 이마에 실업자 딱지가 붙는다. 꿈 많은 ‘대학역(大學驛)’ 다음 역이 고단한 ‘백수역(白手驛)’인 셈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4년 내내 성장률 4%대에서 넘어지고 주저앉기를 되풀이해왔다. 지금 이웃 일본 젊은이의 96%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기업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웃 중국 경제는 10년 넘게 10%대의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어머니들은 벌써 몇 년째 무너지는 교육 더미에 깔려 자녀들의 인생이 망가질까봐 아들 딸을 해외로 업어 나르기 바쁘다.

    이런 할 일 많은 나라의 바쁜 대통령이 제백사(除百事)하고 기자들의 ‘취재 선진화’에 헌신하는 배경 설명을 들으면, 선진국 기자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기자들의 취재 방식을 정상화·합리화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선의(善意)로 나섰다”는 말씀이다. 더 까무러칠 일은 대통령의 이 말씀에 대한민국 모든 장관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누구 한 명 “나라가 어려운데 그런 곳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겠습니까”라고 되묻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라 체면을 생각하면 이 부근에서 멈추는 것이 옳다. 그러나 아무리 애국심이 소중하다 해도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 다른 도리가 없다. 이 나라의 ‘취재 선진화’란 나라의 돌아가는 내막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게 본업인 기자들과 나라 사정에 관한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할 의무를 지닌 공직자들을 따로따로 격리 수용하려는 것이다. 앞으로는 어느 공무원이 모월(某月) 모일(某日) 몇 시 몇 분에 어느 기자와 얼마 동안 만났다는 전자 기록까지 남기도록 하겠다는 게 이 정권의 포부다.

    이 대목에 이르면 너나없이 ‘유토피아’란 단어의 원래 뜻을 떠올리게 된다. ‘유토피아’의 어원(語源)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결국 ‘취재 선진화’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독창적 발상’이라는 말이다.

    사악(邪惡)한 권력일수록 말을 비틀어 정반대의 뜻으로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내놓은 공포의 미래 소설 ‘1984년’의 무대가 그런 나라다. 독재자 ‘빅 브라더(Big Brother)’를 숭배하는 이 나라의 통치 이념은 ‘감시하고 반복하라. 그럼 겁 많고 어리석은 국민은 결국 믿게 된다’는 것이다. 전쟁을 담당하는 기관을 ‘평화성(平和省·Ministry of Peace)’, 사상통제를 담당하는 기관을 ‘진리성(眞理省·Ministry of Truth)’으로 부른다. 이 기관들은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걸 복무 지침으로 삼고 끊임없이 역사를 고쳐 써 나간다.

    이 정권은 2004년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이란 멋진 이름으로 신문의 자유로운 발행과 배포에 쐐기를 박았다. 2003년엔 ‘개방형 브리핑제’라는 서양 냄새 물씬 풍기는 제도를 도입해 기자들의 자유로운 정부 기관 출입을 금지했다. ‘진리성’에서 사상을 통제하고 ‘평화성’에서 전쟁을 관장토록 한 ‘1984년’ 나라의 문법(文法) 그대로다. 이 정권은 지난 4년간 보도에 대한 불만으로 676번이나 언론 멱살을 잡고 언론중재위란 데로 끌고 갔다. 김영삼 정권의 25배 김대중 정권의 6배다. ‘감시하고 반복하라’는 ‘1984년’나라의 통치 이념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임기 내내 언론을 향한 저주에서 풀려나지 못하다 끝내는 자신이 불행해지고만 어느 미국 대통령이 심복들에게 털어놨다는 이야기에는 권력의 어두컴컴한 속내가 그대로 묻어난다. “선출되지도 않은 언론이 권력 행세를 하려 한다. 공격하고 증오하라. 언론은 적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언론이 알고 싶어하는 것 대신 정권이 알리고 싶은 것을 던져 주라.(리처드 닉슨·미국 37대 대통령)” 사태의 본질은 예나 이제나 거기나 여기나 결국은 대통령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