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선룰 논란’이 극적으로 봉합되며 한나라당이 ‘파국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여론조사 하한선(일반국민 투표율 67%) 보장’ 조항 포기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통큰 양보’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반영하듯 경선룰 논란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대선 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지지 이탈층(‘이전에는 좋았지만 지금은 싫다’ 17.1%) 비율이 유입층(‘이전에는 싫었지만 지금은 좋다’ 8.3%)보다 높게 나타나는 등 일정부분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수치만을 놓고 보면 ‘경선룰 논란’은 박 전 대표보다 이 전 시장에게 좀 더 많은 ‘실익’을 가져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경선룰 논란’을 후보 개인의 유·불리 문제로 접근한 것이 아닌 ‘원칙의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의 “조건 없는 양보” 기자회견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잘 판단하셨다”고 환영하면서도 “지난번 세 번 양보했는데 이번에 룰이 또 바뀐 것 아니냐. 또 한 번 바뀐 룰을 받은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또 한 번 양보한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바 있다.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경선룰의 원칙’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경선룰 논란이 정점에 이르렀을 당시 박 전 대표는 ‘원칙 유지’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 발표 직후 ‘받아야 한다’는 온건론과 ‘받으면 안된다’는 강경론이 팽팽하던 캠프 분위기는 박 전 대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 표명으로 단숨에 정리됐다. 박 전 대표는 중재안에 따른 ‘표 계산’을 하는 캠프 실무자에게 “내가 지금 유·불리 때문에 이러는 것 같으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캠프 한 관계자는 “대의명분이 분명하지 않으면 박 전 대표를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중재안 수용 여부에 따른 정치적 득실보다는 “기본합의가 무너졌고, 당헌·당규가 무너졌고,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무너진 경선룰로 치러진다면 경선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박 전 대표의 ‘원칙주의적 입장’에 캠프 내 “원론적으로는 옳지만 내홍에 대한 모든 책임이 우리 쪽으로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결과론적으로 박 전 대표의 ‘대쪽 같은 원칙주의’로 한나라당의 ‘경선룰 원칙’은 지켜졌다. 경선룰 논란 봉합에 따른 양 대선주자의 이해득실에 대한 여러 지적이 나왔지만 박 전 대표는 그 무엇보다도 ‘경선룰 원칙을 사수했다’는 점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다. 박 전 대표측은 현재 발표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는 “곧 뒤집힌다”고 자신하는 만큼 ‘경선룰 논란’에 따른 지지율 변동에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들이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이 내놓은 후보를 믿을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선진국은 상식이 통하는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나라다. 정치권부터 부패와 절연하고 법과 원칙을 지킨다면 대한민국은 반드시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정신적 가치를 함께 가진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강 대표가 중재안을 발표한 9일 대전 문화동 한나라충청포럼 특강 중)

    “지도자에게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이겠느냐. 대통령이든 당 대표든 그룹의 지도자든 굽히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것 아니냐.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에 따라 지도력이 생길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다 봐온 것 아니냐”(이 전 시장 기자회견 다음 날인 15일 선생님들과의 오찬 뒤 기자들과 만나)


    한나라당이 8월 경선을 성공적으로 치르기까지는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 대표가 바라보는 지뢰의 뇌관은 ‘원칙’에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