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이상 유럽병을 따라서는 안 된다

    지난 5월 6일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앞세운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의 승리는 12월 19일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를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좌파정책으로는 국가를 살릴 수 없다는 점이며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좌파정권이 종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재 세계의 흐름이다. 이탈리아 우파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도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의 승리는 유럽이 사회주의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2007. 5. 9, 동아일보)

    1998년 독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SPD)의 승리로 유럽연합(EU) 15개국 중에 13개국에 좌파정권이 들어서게 되어 20세기가 끝날 무렵 전역에서 좌파가 득세하던 유럽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 작년 9월 17일 스웨덴 총선에서 좌파가 패배한데 이어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좌파가 패배함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좌파가 퇴색하고 있다. 이로써 유럽에서는 좌파시대가 막을 내리고 우파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어 좌파는 상당 기간 동안 영향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성장 대(對) 복지'와 '시장 대 국가' 노선의 대결이었다. 승리한 사르코지는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자"는 구호를 통해 '시장과 성장' 정책을 제시한 반면 패배한 좌파후보는 "더 정의로운 사회가 더 강한 프랑스로 가는 길"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와 복지'라는 전통적 좌파정책을 내걸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유권자들은 복지 모델을 고집하는 좌파를 버리고 우파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좌파 집권 14년과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의 우파 집권 12년이라는 '잃어버린 26년' 동안 시행된 좌파정책의 결과 세계 8위(1982년)에서 19위(2005년)로 밀려난 국민소득, 10%(2005년)에 육박하는 실업률, 정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상회할 정도로 비대해진 공공부문과 같은 '프랑스병(病)'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마저 대중적 인기에 급급해 털어 버리지 못한 좌파정책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프랑스에 앞서 스웨덴에서도 작년 9월 17일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함으로써 1950년대부터 좌파정당이 주도해왔던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델'이 심판을 받았다.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둬 복지를 책임지는 '큰 정부'를 핵심으로 하는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노동생산성의 하락과 경쟁의욕의 상실과 같은 '스웨덴식 복지병'을 가져왔다.

    그 결과 세계 5위(1970년)에서 13위(2004년)로 급락한 국민소득과 국가 통계와는 달리 17%(2004년)에 이르는 실질 실업률(맥킨지 보고)에다 상위 50개 기업 중에 1970년대 이후 창업한 회사가 전무(全無)할 정도로 스웨덴 경제의 위상이 급락했다.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 일하지 않고서도 먹고살기에 충분한 실업수당을 받기 때문에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마저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는 현상이 만연했던 결과이다.

    한편 영국의 경우 1970년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완벽한 복지체제를 추구하면서 좌파정책을 시행한 결과 끊임없는 기업 도산과 심각한 재정 파탄에 이어 1976년에는 IMF 구제금융까지 받는 경제 붕괴로 이어졌다. 이처럼 심각하던 '영국병'은 1979년 이후 감세, 민영화, 복지 축소로 대표되는 마가렛 대처의 우파식 처방을 통해 치유되었고 현재의 노동당 정권에서도 '제3의 길(the third way)'과 같은 사실상의 우파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 또한 '사회적 시장경제' 추구로 인한 복지 부담으로 경제성장률은 1970∼1980년대의 2.5%에서 2000년대의 1% 미만으로 떨어진 반면 실업률은 1970년의 0.4%에서 2005년에는 11.7%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나타난 국민의 근로의욕 상실과 국가경쟁력의 추락과 같은 '독일병'도 2005년 출범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우파식 개혁을 통해 점차 치유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높은 세율과 큰 정부로 상징되는 유럽 복지 모델은 결코 국가를 발전시키지도 않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도 않았다. 유럽 복지 모델은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경제 번영을 이끌었던 자본마저 완벽하게 갉아먹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럽 복지 모델은 국민의 근면성, 책임감, 정의감과 같은 정신적 자산마저 갉아먹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유럽 복지 모델의 치명적 결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도 못되는 잔여 임기를 남기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끝장이 나버린 유럽 복지 모델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노대통령은 '비전 2030'과 같은 무리한 복지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고 양극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세계의 흐름에 역행(逆行)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향후 대선판을 '갖은 자 대 못 가진 자'라는 극단적 대결 상황으로 몰아가려 하면서 우리 경제를 가야 할 방향과는 반대로 이끌어 가고 있다. 그 이론적 배경은 물론 유럽 복지 모델이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좌파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우리 경제도 이미 근로의욕 저하, 투자의욕 상실과 같은 비현실적인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 경제성장의 정체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채무는 급증하고 고용환경 또한 악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유럽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복지 모델의 도입이 아니라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통해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추구하는 일이다.

    그 구체적인 처방은 갈수록 방만해지고 있는 공공부문의 개혁, 불필요한 정부지출의 감축,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는 노동운동의 제약, 기업활동을 저해하고 있는 각종 규제의 철폐 등과 같은 개혁을 통해 불필요한 정부개입을 줄이고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는 길이다. 이들 문제는 모두 정부가 앞장서 제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문제들로서 일시적인 부작용을 수반할 수도 있는 문제들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그 길만이 중병에 걸린 우리 경제를 다시 소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도 중병을 치유하겠다는 의지와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다. 좌파정책을 추구하는 여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명확한 노선과 정책보다는 숫자 놀음이나 신조어 경쟁에 열중인 야당이나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아직도 '유럽 복지 모델'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당이나 '운하와 페리'나 논하는 야당이 각성하는 날은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