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타결에 따라 EU와 NAFTA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권이 새로 탄생하게 되어 국제사회에서 우리 경제의 위상이 획기적으로 증대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미 FTA 협상 타결은 붕괴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한미 외교관계와 안보동맹의 회복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한미관계는 안보동맹 위에 새로이 경제동맹을 추가하게 되어 새로운 차원의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국제관계는 점차 정치와 경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정경분리의 지역주의'라는 가치가 공유되어 왔다. 이는 일본, 중국, 아세안(ASEAN)이 모두 공유하는 가치로서 일본조차 미국을 동아시아 경제에 끌어들이는 것을 피해 왔다. 그러나 한미 FTA는 이러한 동아시아 지역주의 가치를 초월하여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묶는 협력의 성격을 보이고 있어 동아시아의 협력 구도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외교와 안보 중심의 협력 구도가 전개되었던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에서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 일본의 군사력 강화 속에 한국의 자주 노선 추구라는 새로운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한미 안보동맹의 이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첫 번째 FTA 대상국으로 하는 전략적 선택을 통해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협력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10여 년 동안 한미관계가 불편한 관계로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한미관계를 걱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미국 정부 관리조차 한미 FTA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생각이 왜 달라졌을까? 그것은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한미 FTA가 가져다 줄 경제적 효과 외에도 동북아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FTA를 동맹국이나 특별한 정치, 군사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체결해 왔다는 점에서 한미 FTA 협상 타결은 한미동맹을 안보와 경제를 묶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FTA는 경제적 교류 증대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국 기업연구소(AEI) 클로드 바필드 수석연구원의 지적대로 한미 FTA의 경제적 효용성이 외교와 안보에 미칠(spill over)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2007. 4. 6, 조선일보) 이는 북한과 중국 문제 등과 같이 한미간에 공동 대처할 수 있는 이슈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 입장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가 필요한 상황에서 한미 FTA 협상 타결을 통해 경제뿐 아니라 안보 유대까지 강화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최근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작성한 보고서에서도 "한미 FTA가 양국의 통상 증진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포석"이라고(2007. 3. 31, 조선일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 FTA를 균열이 심각해진 한미관계를 봉합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특히 최근 미국의 전략적 가치가 안보와 군사 중심에서 경제적 이득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추세는 한국에서 미국이 지켜야 할 경제적 가치가 커짐에 따라서 안보동맹도 자연스럽게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 FTA 협상 타결을 계기로 한미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켜 나아야 할 것이다. 이상이 한미 FTA 협상 타결이 보여주는 정치경제학적 의미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이번 한미 FTA 협상 타결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요성은 필자가 지난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중국이 그토록 한중 FTA 협상 개시에 안달인 것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한미 FTA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경우 경제뿐 아니라 외교와 안보에서도 중국과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전략적 입지를 크게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기회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의회의 비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현재 양국의 의회에서는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 공히 적지 않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한국 의회가 비준에 동의했는데 미국 의회가 거부해도 문제이지만 역으로 한국 의회가 거부해도 중대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일부 대선주자를 포함한 정치인과 진보세력들 사이에서 한미 FTA를 정치문제화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은 큰 우려를 주고 있다. 필자도 지난번 칼럼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로 한미 FTA를 좌파의 재집권과 정치투쟁을 위한 불쏘시개로 악용하려는 발상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한미 FTA 협상 타결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한미안보조약과 한일협정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대외협정을 맺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한미 FTA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차분하게 협상 결과를 점검하고 향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미 FTA 협상 타결은 분명 우리나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이 기회를 잘 살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