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지지율 50%, 합이 70%가 넘는 두 유력대선주자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은 허상이었다. "착시현상"이라는 내부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세등등하던 한나라당은 결국 25일 무릎을 꿇었다.

    4·25 재보궐선거 결과에 스스로가 "참패"라고 했고 고개를 떨궜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모두 투입하며 전력투구한 선거였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매번 당당하던 한나라당의 목소리는 힘이 빠졌다. 당초 계획보다 40여분 빨리 선거상황실을 찾은 강재섭 대표는 "패배하려면 이렇게 쎄게 패배해야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그가 당사에 마련한 선거상황실에 앉았던 시간은 12분이었다. 

    대폭 당직개편은 물론 당 지도부 전면교체까지 거론된다. 당 홍보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심재철 의원은 뉴데일리와 만나 "이 정도면 참패라 할 수 있다. 대폭 당직개편이 아니라 지도부 전원 책임론까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야 한다. 최고지도부는 자신들의 거취를 놓고 고민중이다. 이미 황우여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명직 당직자 전원은 당직을 일괄사퇴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26일 사직서를 제출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표와 이재오 전여옥 최고위원만이 잠시 선거상황실에 들렀고 나머지 당 지도부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일부 최고위원은 보좌진을 당 선거상황실로 보내 분위기를 체크했다. 당장 불어닥칠 4·25 후폭풍에 어떻게 대응할 지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일 지도부 일원 중 한 사람이라도 지도부 사퇴를 거론할 경우 심 의원이 전망했던 지도부 전원교체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로 한나라당은 적나라한 자신들의 현주소를 확인했다. 4·15총선 이후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40연승을 거두며 '불패신화'라고 자신했지만 이번 4·25참패는 이전 선거와는 의미가 다르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가 12월 대선 전 마지막 선거로 '대선의 가늠자'였다는 점, 또 12월 대선과 가장 비슷한 유형으로 선거구도 짜여졌다는 점에서 참패의 충격은 어느 때 보다 크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고 유권자들 눈에는 열린우리당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과 열린당에는 이길 수 있었지만 반한나라당 구도가 짜여지면 50%의 당지지율과 합이 70%가 넘는 박근혜·이명박이란 두 유력주자를 보유하고도 정권을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정권교체"만 외쳐서는 정권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대선의 승부처라 할 수 있는 '중원'을 놓친 것도 뼈아픈 실책이라 할 수 있다. '충청을 잡아야 대선을 잡을 수 있다'는 정치권의 정설을 어느 정당보다 몸으로 실감한 한나라당이 스스로 자만에 빠져 중원을 놓치면서 정권교체의 길은 더 어려워졌다. "대전선거는 당 지도부가 자만에 빠져 안일하게 공천한 탓"(한 초선의원)이라는 게 당내 대체적인 분위기다. 한나라당의 대선예비후보중에는 충청충신이 단 한명도 없다. 충청권에서 의석은 단 한석에 불과하다. 대선에서 벌일 여권과의 중원경쟁은 매우 불리해졌다.

    한동안 들리지 않았던 "작은선거에 승리하고 정작 대선에서 패한다"는 당내부 우려는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한숨만 나왔고 "대선 또 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번 선거로 강재섭 대표 체제의 힘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천잡음과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불 것으로 관측되며 이 과정에서 박근혜·이명박 양진영간 진부한 책임공방이 벌어질 공산도 크다. 

    한나라당은 이제 현재의 구도로 연말 대선에서 이길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당내에서는 강재섭 대표 체제의 무기력과 함께 박근혜 이명박 두 대선 주자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될 전망이다. 당지도부나 두 대권주자가 현실에 안주해 오만과 무사안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게 됐다.

    정치권의 한 분석가는 이번 선거의 결과는 박근혜 대표 체제하에서의 '재보선 불패 신화'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에 따른 '반사이익'이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분석가는 또 한나라당의 두 대권주자간의 경쟁이 너무 빨리, 또 네거티브 양상으로 전개돼 국민들이 벌써부터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점도 가장 큰 패인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범여권의 후보도 정해지지 않은 마당에 두 후보가 '이전투구'의 오만한 경쟁을 벌인데 대해 국민이 경고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 한나라당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나경원 대변인이 논평했듯이 천막당사 시절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현실에 안주하며 벌써부터 논공행상이나 기대하는 무사안일과 줄서기에서 벗어나 당의 모습을 수권정당으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이번 선거가 '집토끼'만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통렬한 심판을 가한 만큼 한나라당은 '산토끼'를 잡는 방향으로 전략을 대폭수정해야 한다는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하겠다.

    정권탈환이냐 3번째 정권탈환 실패냐 기로에 선 한나라당에 대해 국민들은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나라당이 변화하지 않고 수구부패 정당에 머물러 있는다면 국민들은 연말 대선에서 또 다시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