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이하 '연변자치주')의 해체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연변자치주라는 조선족 공동체 사회가 유지되도록 도와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조선족들로 하여금 탄탄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연변자치주를 떠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 조선족들에게 현지에서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해 주는 일이다.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와 한국 교포의 밀집지역인 중국의 동북3성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를 연결하는 소규모 경제협력 구도를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한민족 경제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장차 동북아 경제협력의 중심이 될 이 지역에서 <한민족 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유익한 일이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이 지역의 지리적 위치, 경제요소, 산업구조 등을 고려해 볼 때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노동력, 러시아 연해주의 자원, 북한의 노동력 그리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협력구도를 형성할 수 있어 향후 우리의 산업구조 개편과 국토의 균형 발전을 모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전략적 측면에서도 향후 한반도 통일과 우리 민족의 활로(活路)에 대단히 중요한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1997년 "젊은 보수주의자의 동북아 읽기"에서 <한민족 경제권>의 형성을 위한 초보적 방법으로 중국의 동북3성 특히 지린성(吉林省)과 랴오닝성(遼寧省)의 요충지역에 대한 기업의 투자를 집중시키는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경제와 통일 그리고 민족의 활로라는 측면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함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구체적 방안으로 전용공단 개발, 대단위 농장 개발 등을 제안한 바 있다.

    <한민족 경제권>이 우리에게 주는 전략적 이익은 무엇인가? 첫째 중국과 러시아 교포들의 공동체 사회의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연변자치주에 대한 투자는 교포 사회의 고급 노동력이 일자리를 찾아 타지역으로 분산됨에 따라 나타나고 있는 연변자치주 조선족 비율의 하락을 막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는 중국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소수민족자치주에 대한 한족(漢族) 이주 장려 정책에 따라 급속히 낮아지고 있는 소수민족 비율의 하락 추세에 대한 합리적 대응책으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 연해주에 대한 투자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 아시아에 밀집되어 있는 교포들 중에서 고향인 연해주로 이주를 희망하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큰 희망을 주게 될 것이다.

    둘째 북한의 향후 변화에 대한 준비 차원에서 필요하다. 현재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동북3성의 개발에 주력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2003년 10월 동북3성 개발에 대한 가이드 라인인 '11호 문건'을 발표한데 이어, 중국국무원은 2005년 5월 동북3성과 북한 접경지역에 대한 개발의지를 밝힌 '36호 문건'을 하달했다. 이에 랴오닝성 당국은 2006년 2월 단둥(丹東) 지역을 포함하는 구체적 개발지침인 '3호 문건'을 발표했다.(2006. 3. 21, 동아일보)

    중국이 동북3성의 개발에 주력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북한의 경제와 정치적 장래에도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연변자치주나 단둥과 같은 동북3성의 전략적 요충지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는 북한의 변화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만일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오늘까지 사용처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이루어졌던 북한에 대한 상당한 액수의 지원 중에서 일부만이라도 전략 지역인 연변자치주나 단둥 지역에 투자되었더라면 조선족 교포 사회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이는 조선족 교포들의 대북 지원을 활성화하는 요인이 되어 북한의 민간경제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조선족은 우리와 중국뿐 아니라 우리와 북한을 위한 유용한 중간집단이기도 하다.

    셋째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한국사 왜곡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필요하다. 이 점은 우리가 <한민족 경제권>을 시급히 추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한국사 왜곡은 조선족의 분산을 통한 연변자치주의 해체와 향후 북한의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 성격이 강하다.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동북3성의 집중 개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앙 정부와 랴오닝성 정부가 단둥 개발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은 신의주를 동반 성장시키겠다는 중국의 가장 확실한 의지 표현"이라는(2006. 3. 21, 동아일보) 단둥 둥강(東港)시 경제협력개발구 가오쥔(高峻) 주임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중국의 투자로 시작될 신의주 개발에 대해 북한은 아무런 힘도 없다. 2002년 9월 추진되었던 북한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사업은 당시 중국이 초대 특구장관으로 임명되었던 양빈(楊斌) 오우야(歐亞) 그룹 회장을 전격 구속하면서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향후 신의주 개발이 추진된다면 그것은 북한의 능력이나 의지가 반영된다기보다는 중국 주도로 진행될 것이다. 중국의 나진항 개발과 두만강 하류 개발 또한 신의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민대 교환교수인 북한 전문가 안드레 란코프가 "중국이 대대적인 북한 재건에 나섰다고 본다"면서 "붕괴 위기를 모면한 북한은 주권국가로 거듭나는 동시에 중국의 위성국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2006. 3. 22, 동아일보) 점도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이는 중국이 생각하고 있는 북한 개발이 한반도 통일보다는 북한의 체제 유지를 고려한 것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이에 대해 민족화해협력범민족협의회(민화협)의 정세현 상임의장은 최근 북한의 중국 경제 종속화 경향을 지적한 뒤 '남북경제공동체' 추진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2006. 3. 21, 동아일보) 그러나 북한의 달러 위조 문제와 핵 문제 등과 같은 남북협력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인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과 경제공동체를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

    이 점은 결국 우리에게는 지역의 선택과 투자의 집중이라는 운영의 묘를 살려 우리 기업의 동북3성과 연해주 진출을 적극 장려하는 방안이 향후 우리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는 길이자 점차 본격화되고 있는 중국의 과도한 대북 진출을 견제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한민족 경제권>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동북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와 정치적 쟁점을 만드는 일은 자제하고 경제협력과 기업투자를 중심으로 우리의 활동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와 같은 초국가적 경제시대에서는 국력이나 영토의 개념이 과거의 통치권, 지배권, 소유권의 개념에서 경제권, 생활권, 이용권의 개념으로 점차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권이 미치는 공간적 개념으로서 국토와 국경은 존재하고 있지만 활동 영역으로서의 배타성은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을 이주시키고 그 지역에서 경제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점에서 중국의 동북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에 대단위 산업기지와 농업기지를 설치하고 그 지역에 투자를 집중시키는 목적은 바로 이 지역에 모여 살고 있는 한민족의 노력을 통하여 연변자치주와 연해주의 번영과 발전을 실현함으로써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한민족 경제권>의 참된 의미와 역할이 있는 것이다.

    필자가 1997년 <한민족 경제권>을 제시한 이후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현재 동북아는 50년 내지 100년에 한 번 있는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가 동북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점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우리는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