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홍준호 편집 부국장이 쓴 <열린우리당과 렉서스 미몽>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렉서스를 꿈꾸며….’

    이계안 의원이 여당을 떠나면서 내놓은 탈당사의 제목이다. 그 골자는 도요타 자동차가 렉서스라는 새로운 브랜드만을 붙인 고급차로 ‘일본의 도요타 제품이 별 것 있나’라는 미국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어 대성공을 거둔 전략을 여당이 벤치마킹하자는 내용이다.

    “‘열린우리당 표’ 상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나갔지만, ‘열린우리당 표’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은 철저히 외면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겹쳐 보이는 열린우리당이 만든 상품은 그 효능과 품질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외면하는 국민에게 훌륭한 상품을 팔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 의원이 말한 특단의 조치란 시장에서 심판이 끝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이란 브랜드를 죽이고 새 브랜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제품은 훌륭한데 포장에 문제가 있어 안 팔린 것이니 포장을 바꾸어 다시 세일즈에 나서자는 것 아닌가? 소비자에겐 우롱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이 탈당의 변이 이미 당을 떠났거나 심리적 탈당 상태인 의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게 요즘의 여당이다.

    여당의원들은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도대체 무얼 잘못했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여하튼 열린우리당으론 안 된다니까 새 당을 만들자”고 말한다. 정처도 없고 왜 떠나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무작정 가출을 꿈꾸는 꼴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의 차기를 꿈꾸는 이들이 임기 말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을 몰아세우는 일은 과거에도 많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당을 버리진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당의 안방을 차지하려 육박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여당의원들은 대통령을 버리고 나아가 당까지 버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몸담았던 당을 향해 “정체성 없는 잡탕”이라고 침 뱉고, “무능과 무책임, 무생산의 질곡에 빠진 정당”이라고 낙인한다.

    이 자기 부정의 대열에 ‘포스트 노무현’을 꿈꾼다는 이들까지 뒤를 이을 채비이고, 다급해진 노 대통령은 “나가려면 내가 나갈 테니 협상하자”고 손을 내민다. 대통령이 여당의원들과 정치 협상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도 처음 보는 풍경이다.

    집권당의원들이 집권당을 버리는 이 초유의 사태는 이 정당으론 ‘포스트 노무현’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박한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당의원들은 여당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여당에서 차기를 꿈꾸는 이들에 대한 기대까지 함께 거둬들인다는 말이 된다. 사실 여당에서 차기를 노리는 이들은 3년 전 총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새로 만든 이들이다. 내 손으로 만든 당이니 해체 작업도 내 손으로 하겠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들이 노 대통령과 의기투합했던 3년 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기에 이러는 것인지 보통 사람들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포스트 노무현을 말하고 노무현 브랜드를 지우겠다고 나선 이들에게선 지금도 이 정권 내내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개혁’ ‘평화’ ‘민주’ 같은 그 시절 그 관념의 단어들만 되풀이 들려오고 있다. 포장이라도 바꾸는 ‘렉서스’는커녕, ‘도요타’ 수준 그대로인 것이다.

    여당의원들은 “일단 헤어졌다 대선 때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다시 만날 땐 ‘렉서스’란 새 브랜드를 공유하게 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대로는, 무엇보다도 여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집권세력이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어제 불렀던 노래들을 오늘도 변함없이 불러대는 이 모습으로는, 렉서스의 꿈은 그저 미몽일 뿐이다. 여당 사람들은 이런 미몽을 꾸느니 차라리 ‘도요타’란 기존 브랜드를 노 대통령과 함께 우직하게 들고 가서 심판을 구하는 게 정직한 자세이고 그쪽이 국민 보기에도 민망하지 않다. 그것이 싫다면 브랜드와 함께 제품까지 완전히 뜯어고치는 발상과 노선의 대전환을 해야 하고 그것이 눈속임이 아님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