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26일 신년회견을 통해 영수회담 성격의 ‘민생경제회담’ 개최를 제안했으나 청와대가 ‘개헌의제’를 역제의 하고 나서는 바람에 성사가 불투명해 보인다.

    그러나 영수회담은 반드시 열려야 한다. ‘정권교체’와 ‘재집권’에 대한 집착보다는 여야 영수가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폭넓은 협상과 토론을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하는 판에 대선을 일년 앞두고 벌써부터 민생은 내팽개치고 선거에만 골몰한다면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자명한 것 아닌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일본은 앞서가고 중국은 쫓아오는 사이에 새드위치로 끼여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고생을 많이 할 위치에 있는 게 우리 한반도”라고 한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대선 경쟁은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 맡겨두고 노 대통령과 강 대표가 허심탄회하게 만날 수 있다면 회담결과를 떠나 만남 그 차체만으로도 삭막한 대선정국에 훈기가 돌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선 결과는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니 공정한 대선을 위한 기본틀을 만들고, 사학법을 포함한 2월 임시국회 운영과 관련된 문제와 자유무역협정, 연금개혁 등 다음 정권에 부담으로 남을 수 있는 산적한 민생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강 대표가 주장한 개헌시도 즉각 중단과 대선 불개입 선언, 관리내각 구성은 노 대통령이 25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공개적 지지호소와 야당의 예비후보 폄하발언으로 ‘대선중립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2003년 말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며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호소, 대통령 탄핵을 초래한 적이 있다.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26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립의무 위반과 사전선거운동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헌정사에서는 1987년 현행헌법 개정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이 예외 없이 중립내각을 구성한 선례가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도 대선을 공정 관리할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남은 임기 동안 야당의 도움을 받아 국정을 안정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정당인이나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국가기관인 대통령의 신분에서 선거 관련 발언을 하는 경우에는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의무의 구속을 받는다.”는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강 대표도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졌던 분을 한나라당에서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과거 정권교체기에 이념·정책과 관계없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던 우리의 고질적 정치문화에 종지부를 찍는 정치 선진화를 위한 진일보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여권의 분열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배려’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의지를 읽을 수 없다고 본다. “대통령은 민생에 전념하고 차기 대선에는 초연하라”라는 것이 절대적인 민의(民意)라는 것을 노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임기말 대통령의 정도(正道)는 개헌시도를 통한 재집권에 대한 무리수를 두는 것 보다 지난 4년 간의 국정운영의 실정(失政)을 자성하면서 공정선거를 통해 차기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