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자 문화일보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오후여담 '정운찬의 복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운찬이 서울대총장까지 이른 데에는, 진부한 얘기지만 훌륭한 부모가 계셨다. 그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정운찬을 충남 공주에서 싸안고 상경했다. 어머니의 말씀. “자네, 우리 집안에 정승이 3대째 끊긴 걸 아는가.” 어머니는 자식에게도 ‘자네’라는 호칭을 썼다. 말의 품격을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는 이런 말씀도 남겼다. “잔칫집엔 세번 이상 부르지 않으면 가지 마라.” 그런 말씀 그대로 정운찬은 정승은 아니지만 본인의 표현처럼 “세상에서 견줄 만한 직분이 없는” 서울대 총장 자리를 잘 해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끊임없이 ‘ 범여권 대선후보 추대론’이 나오고 있다.

    정운찬은 발끈한다. ‘절대’ 그럴리 없다고. 그러나 따라붙는 의문이 있다. 그러면 열린우리당 중진들과 왜 만났는가. 친목을 위해? 그는 지난해 당 의장 정동영을 총장실에서 만났다. 김근태, 정대철, 김한길… 여권 사람들이 숱하게 그를 만났다는 보도다. 정치인들을 만났다가 순진해서 이용당했다고?

    그의 ‘말꼬리’ 에서도 복심(腹心)이 읽힌다. 총장 퇴임 인터뷰에서는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는 아직 생각이 없으므로 이변이 없는 한 정치에는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정치할 생각이 생기고 이변이 나타나면 정치를 한다? “능력이 없고 정치에 들어갈 준비가 돼있지 않다”고도 했다. 꼭 이런 식으로 말하다가 정계에 발을 담그는 사람들의 ‘말장난’ 어법대로다. 이래도 생사람을 잡는다? 

    정운찬은 나갈 생각이 있다면 당장 뛰어드는 것이 본인의 정치적 장래나 이 나라 지성계의 명예, 그리고 정계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다. 어차피 나갈 생각이라면 빨리 나서서 준비하라. 한나라당 빅3에게도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파괴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정치가 서생이 할 수 있는 직업인지, 아니면 한량이나 낭인이 성공하는 직업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를 부도낸 열린우리당의 입방아 대상에 오르는 것 자체가 본인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인지 아닌지도. 

    도쿄대나 베이징대 총장이 임기를 마치면 정치적 구설수에 오르는가. 지성의 상징이 그런 세력을 향해 날벼락을 치며 혼을 내야 할 국가 상황인데도 기껏 이런 문제로 회자되고 있으니…. 나라의 품격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