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재교 변호사(자유주의연대 부대표)가 쓴 시론 '허위 지식인 4인방에 돌아간 부메랑'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1년 11월의 청명한 가을날 작가 이문열씨가 사는 마을에서 장례식이 벌어졌다. ‘책 장례식’이었다. 이문열씨의 정치적 의견에 불만을 품은 좌파단체 회원들이 ‘시체’가 된 그의 책을 장례 지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전대미문의 테러에 대해 박완서씨 등 몇몇 문인을 제외한 문화·예술인들은 침묵했다. 이문열씨는 그때의 충격으로 2년간 창작 의욕이 사라졌다고 토로한다. 이문열씨가 당시 외로웠다고 심경을 밝힌 것을 보면, 어쩌면 좌파의 ‘장례식’보다는 다른 문화·예술인들의 침묵이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풍토에서 최근 뉴라이트재단이 발행하는 계간 ‘시대정신’의 좌파 지식인에 대한 실명 비판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시대정신’은 집권 민주화 세력에 사회변혁이론을 제공한 대표적 좌파 지식인인 강만길, 백낙청 두 교수를 실명 비판했다. ‘시대정신’은 여기에 리영희, 한완상 두 교수를 추가하여 ‘허위 지식인 4인방’으로 규정하고 퇴출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한다.

    386세대인 필자가 대학 시절 좌파 지식인들의 글을 처음 접하면서 느꼈던 놀라움과 이를 숨겼던 공교육에 대한 배신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시야가 넓어지면서 좌파 지식인들에게 속았다는 또 다른 배신감이 들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민주와 통일을 주장하면서도 가장 반민주적이고 반통일적인 김정일 집단을 옹호하는 모순을 보였다. 평소 인권에 그토록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은 김정일 정권이 수백만 주민을 굶겨 죽여도, 탈북하다가 잡힌 주민을 공개 총살해도, 그저 못 본 척할 뿐이었다. 좌우 양 진영 모두에서 중국의 문화혁명은 재앙이었다는 거의 일치된 평가가 나온 이후에도 리영희씨는 문화혁명을 미화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적이 없다. ‘반전·반핵’을 늘 부르짖던 그들이 김정일이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하자 어느 사이 ‘반전·평화’로 바꾸었다.

    김정일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억지는 여전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그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햇볕정책의 제1 원칙이었건만, 햇볕론자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김정일의 핵·미사일 불장난에 따끔한 회초리를 들자는 주장에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며 혹세무민하고 있다. 정치인인 DJ야 죽으나 사나 햇볕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강변해야겠지만, 지식인이라면 최소한의 논리적 일관성을 견지해야 한다.

    ‘허위 지식인 4인방’은 논리적 일관성도 없고, 명백하게 드러난 오류를 바로잡지도 않았다. 퇴출 대상으로 지목된 이유일 것이다. 다만, 퇴출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허구적 이론이어야 한다. 따라서 퇴출운동은 인식공격이 아닌 이론에 대한 비판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적지 않은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원로 교수가 동료 원로 교수를, 제자가 스승을 비판하는 일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비판에 나선 것은 그 4인방의 낡은 이념이 권력화되었고, 또한 요즘 보이는 국정 난맥상의 뿌리라고 보았기 때문이겠다.

    좌파 지식인들의 비극은 민주화 세력의 집권 이후 권력화된 데에서 비롯한다. 지식의 권력화는 지식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4인방 퇴출운동’은 권력화된 지식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 비판이 계기가 되어 좌파 지식인들이 자기 정화 능력을 회복하고 세계사의 흐름에 부합하는 진정한 진보논리로 재무장한다면, 나라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합리와 이성의 이름으로 좌파 담론이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