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보면 지난 60여 년간의 한국의 역사는 우좌 대결의 역사였다. 자유민주주의와 국가발전을 목표로 하는 우익진영과 공산독재주의와 친북종속을 주장하는 좌익진영의 대결이었다. 크게 보아 이 우좌의 대결이 한국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본줄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와 좌의 이념이 갖는 가치를 평가할 때 우의 이념은 정당하고 발전적이고 인간적인 반면 좌의 이념은 부당하고 퇴행적이며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인격권이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만인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하는 이념이 우익의 이념이라면 소위 계급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사람을 차별하여 노동자 계급이 독재를 하겠다고 하여 차별적 사회를 폭력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이념이 바로 좌익의 이념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 두 가지 이념, 가치관의 대결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익의 이념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누구나 동등한 인격체로서 동등한 취급을 받으며 동등한 성공의 기회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좌익의 이념은 계급의 적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회귀적 신분사회며 독재사회다. 신분에 따라 차별을 받는 사회가 바로 공산사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좌익이념을 가진 집단이 끈질기게 대한민국을 뒤집기 위해 비밀리에 또는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좌익에 가담한 사람들이 개인적 출세를 위해 동료국민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범죄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적 사건도 해석하는 것이 정당하다. 우리가 지금 4.19혁명이라고 하는 학생의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것은 정의롭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게 되면서 4.19의 역사적 의미는 또 다시 해석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특히 4.19 이후 들어선 제2공화국의 정체성을 볼 때 반드시 긍정적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남으로 오라, 북으로 가자”는 구호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6.25전쟁이 끝난지 겨우 10년도 되기 전에 남북합작을 추진하는 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4.19의 의미를 단순한 부정선거 반대로 볼 것인지 아니면 북한과 연계된 좌익이념의 실현 수단이었는지 역사적으로 다시 평가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4.19직후 그리고 제2공화국의 친공적 성향이 5.16군사쿠데타를 유발한 것이다. 그래서 5.16세력은 ‘반공’을 제1의 가치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또 그것이 5.16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 것이다.

    4.19가 혁명이 된다면 5.16의 반공이념이 의미를 잃게 된다. 4.19로 인해 야기된 친공적 사회분위기에 위험을 느낀 군부세력이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거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4.19가 오늘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혁명적 거사였는지 아니면 우리 역사에 무수히 등장하였던 퇴행적 세력의 반기였는지 역사적으로 재검토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4.19가 혁명으로 승격되면서 우리가 잃은 것도 많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의 지위에서 갑자기 독재자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민족의 반역자로 매도하는 세력이 바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공산군사독재세력인 것을 감안하면 이것 역시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에게 이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북괴가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하는 것은 당연히 자신들이 주도하여 한반도를 공산체제로 흡수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였고 우리는 지금 김정일의 군사독재체제에서 노예처럼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을 것이다. 정말 아찔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따라서 3선개헌이나 부정선거의 과를 감안하더라도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의 공은 그를 국부로 추대하여 기리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거나 이상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4.19를 혁명적 지위로 끌어 올림으로써 5.16도 빛을 바랜다. 그 말은 곧 ‘반공’의 가치가 사라진다는 뜻이며 국가건설의 공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것 또한 북괴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북괴는 허약한 장면 정부를 공략하여 한국을 공산화하거나 최소한 지금의 주장처럼 연방제 단계까지는 만들 수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북괴의 그러한 전략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것이 바로 5.16이었다. 그렇다면 4.19가 아니라 5.16이 혁명의 지위로 올라서야 하지 않을까?

    작명을 어떻게 하든 역사적 사실은 존재한다. 문제는 작명에 의해 역사적 의미가 왜곡된다는 점이다. 역사해석도 수학적 알고리즘 풀이와 비슷해서 전제에 의해 해석이 달라진다. 4.19를 혁명으로 풀이하면 그 전의 역사도 그 후의 역사도 모두 죽게 되어 있다. 이것이 4.19가 처한 미묘한 역사적 위치다. 그렇다면 4.19가 살고 한국의 역사가 죽느나 아니면 한국의 역사가 살고 4.19가 죽느냐의 문제다. 아니 그처럼 본질적 대결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4.19가 의거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에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의 문제다.

    역사해석은 관련자들의 우격다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포럼에서 보인 4.19단체의 폭력은 자유민주사회에서 허용하기 힘든 비민주적 행태다. 역사해석은 학문적인 것인 만큼 정치적 패거리들이 서로 사생결단 싸우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해석도 들어보는 것이 보약이 된다. 자신들이 반성해야할 부분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4.19만 살고 대한민국은 죽어도 좋은지 4.19단체들도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아울러 우리 역사에는 아직 재해석을 필요로 하는 사건들이 있다. 역사가 뒤집힌 제주도4.3사건, 6.10사건, 그리고 5.18광주사건이다. 4.3은 명백히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공산세력이 벌인 무장투쟁이었으며, 6.10도 지금와서 밝혀졌지만 친북세력에 의해 주도된 것이며, 5.18에 대해서도 재해석을 요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들 사건들을 우격다짐으로 혁명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역사를 모독하는 것이다. 개별 사건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리는 역사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