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전체가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傲氣) 개각'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소식으로 소란스러운 사이에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국가적 행사가 정부와 국민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다시피 치러졌다. 그것은 바로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3일 동안 부산에서 열렸던 제5차 세계한상(韓商)대회이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1,500명에 이르는 해외동포 기업인들이 참가해 규모면에서는 사상 최대의 대회로 치러졌지만, 정작 지대한 관심을 갖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제공했어야 할 정부와 기업인들은 행사의 개최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 주최측인 재외동포재단의 전언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화상(華商)대회 때는 노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였고 경제단체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요란하게 법석을 떨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세계한상대회에는 정부에서 국무총리만 개막식에 참석했을 뿐 단 한 명의 경제단체장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물론 국내외를 열심히 누비고 있는 대선 예비후보들조차 한 사람도 이번 대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는 물론 아직 한상의 경제력이 화상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화상은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80%와 교역의 40%를 차지하면서 중국경제의 발전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화상은 동아시아 상권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화상이 보유하고 있는 유동자산도 3조 달러를 넘는다.

    반면 한상의 경우 지난해 4차 세계한상대회를 통해 이루어진 교역량은 8,500만 달러 수준으로 지난해 총수출액 2,844억 달러의 0.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한상의 모국 투자 또한 3억 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화상에 비해 미미하다. 그러나 이번 대회 참가자 중에서 상위 22명이 이끄는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을 모두 합치면 약 20조 원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9% 정도에 이르는 적지 않은 규모이다.

    따라서 해외에 널리 진출해 있는 한상들과 국내 기업인들의 협력을 통해 상호간에 '윈-윈(win-win)'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과거 중국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중국경제의 발전에 대한 화상의 기여와 중국경제의 발전을 통한 화상의 성장이라는 '윈-윈(win-win)' 효과는 한상의 역할 또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1960년대와 1970년대 홍콩, 대만, 싱가포르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성장했던 화상은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1979년 이후 대중국 투자를 통해 중국경제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역으로 이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중국경제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다국적 거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호 연계는 경제적 측면에만 그치지 않고 거대한 중국형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이어져 정치적 측면에서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급속히 신장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특히 중국은 중국형 네트워크를 토대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자국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고 이는 현재 중국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ASEAN과의 다자외교 틀을 형성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중국의 사례를 통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한상의 성장과 역할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첫째 한상의 경제적 역할이다. 현대적 의미의 국력은 과거의 정치적 개념을 초월하여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가적인 경제력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와 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는 교포와의 경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으며 한상은 중요한 매개(媒介)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한상의 외교적 역할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정부 차원의 외교를 초월하여 민간 외교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한상은 거주국에서 성공한 기업인이자 적지 않은 현지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민간 외교관이라는 점에서 우리 외교의 소중한 재산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더 많은 한상들이 거주국의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셋째 한상의 문화적 역할이다. 현재는 이미지 전쟁의 시대이다. 해외의 우수하고 능력 있는 한상은 근면하고 창의력이 풍부한 한민족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한상의 성장을 통해 거주국의 번영과 발전에 적극 기여케 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위상을 증대시키고 민족의 우수성을 적극 발휘하게 해야 한다.

    넷째 교포사회에 대한 한상의 구심적 역할이다. 거대하면서도 밀집도가 높은 한상의 힘은 교포사회의 응집력과 집거도(集居度) 유지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일본의 주요 도시나 연변, 연해주, 중앙아시아 등의 전략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한상의 성장을 통해 교포 사회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한상의 끊임없는 성장과 역할은 대단히 소중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통일을 넘어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한민족을 연결시킬 대통합의 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상을 더욱 성장시키고 조직화하는 정부 차원의 비전과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지도자들은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상황이다. 과연 이 나라에 진정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지도자 감은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