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일 북핵 사태와 관련, “조금이라도 국가와 민족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며 대북특사를 시사하는 발언을 해 주목된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팔래스호텔에서 가진 ‘서초포럼’ 초청 조찬강연에서 국정감사로 잠시 미뤄뒀던 강연정치를 재개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조로 북핵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노무현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연 내내 대북강경기조를 유지한 박 전 대표는 야당 대표로는 유일하게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을 만났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당시 생각과 자세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조금이라도 국가와 민족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대북특사를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북핵 사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길은 협상이다.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은 식량과 에너지 자원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우리가 효과적인 협상 카드를 갖고 있는 것이다”고 한 박 전 대표는 이어 자신과 북한과의 ‘특별한 인연’을 이야기했다. 그는 “어머니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사람 총탄에 돌아가셨지만 나는 개인적인 아픔보다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심정으로 2002년 김정일을 만나 남북한 신뢰를 쌓고 공동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국군포로 생사확인,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시, 금강산댐 공동 조사를 제시했고 흔쾌히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1968년 무장간첩이 청와대 앞까지, 지금은 북핵 위협이 국민 집 앞까지”

    박 전 대표는 이날 북한 핵실험 강행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불안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노무현 정부의 대처능력을 강하게 질타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회상하는 것으로 말문을 연 박 전 대표는 “1968년에는 무장간첩이 청와대 앞까지 왔지만 지금은 북핵 위협이 우리 국민 모두의 집 앞까지 와 있다”며 북핵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 “당시 고1 학생이었는데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참 많이 놀랐다는 생각이 든다”며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특별한 경험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튼튼한 안보’가 기반이 된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설계도면을 갖고 있더라도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안보가 흔들리면 경제도 바로 설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핵무기가 언제 땅에 떨어질지 모르는데 국내·외 자본을 누가 투자하겠는가. 북핵을 없애야만 우리 경제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실험 강행으로 북한 의도를 완벽하게 봤다. 핵무기 보유를 위한 것이 아닌 대미 협상용이라고 주장했지만 핵무장을 위한 것이었다”며 “십수년간 추진해온 대북정책은 완전 실패로 끝났다”고 규정했다. 이어 “무엇이 잘못됐는지 반성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이 정권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며 “핵실험 터진 날에는 북한이 핵실험 한 마당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갈 수 없다고 했지만 하루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정부가 상대라면 누구라도 핵개발 계속 했을 것”

    그는 “핵을 가진 북한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겠다는 것인지 북핵을 반드시 폐기시키고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말로만 북핵을 반대한다고 했지 이를 막기 위해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북한 핵 개발 일리가 있다고 하면서 방조해왔고 국제공조만 흐트러뜨렸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비판의 수위를 좀 더 높여 “북한이 그동안 핵개발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정부가 잘못 대응해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여러분이 북한 지도부라도 이런 정부가 상대라면 계속 핵개발을 했을 것”이라며 “잃을 것은 없고 협상력만 커진다면 핵 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박 전 대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단호함이 우리의 출발선이다”며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단호함과 결연함으로 행동해야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한층 강경해진 입장을 나타냈다. “레이건 대통령의 단호함이 소련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했고, 안보에 대해 누구보다 단호한 닉슨이었기에 적국인 중국에 가서 수교를 추진해도 미국인들이 안심하고 지지했던 것”이라며 “정부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국민도 정부를 믿고 안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관련, “이제라도 그렇게 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동안의 6자회담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며 “회담을 위한 회담이 아닌 북한 핵과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실질적인 회담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핵불용이라는 원칙하에 데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적극 동참 ▲금강산관광·개성공단사업 등 대북경협 중단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확대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계개편, 국민 신뢰 잃은 여당 문 닫는 것”

    박 전 대표는 또한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정계개편과 관련,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여당이 이제는 견디다 못해서 문을 닫는 것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은 향후 진행되는 정계개편에서 빠져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북한 핵실험 사태로 빚어진 안보불안 상황을 지적한 뒤 “모든 것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 해야 할 정부·여당의 최대 화두는 우습게도 정계개편”이라며 “지금이 정계개편을 이야기할 때인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권연장만 생각하는 것을 볼 때 국민을 이렇게 우습게 생각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정계개편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라면 현 정부와 열린당에 속해 있는 사람은 정계개편에서 빠져야 한다. 그래야 순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