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완전국민경선)가 갑자기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것은 정당이 선거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인 프라이머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당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방하는 것을 말한다. 열린우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내년 대선후보를 선출하기로 했고 한나라당에서는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오랜 연구와 검토를 거쳐 결정한 경선 룰을 무시하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핵심 쟁점은 당원의 선택권을 어느 정도 존중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당원의 선택이 민의와 유리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도입된 제도이지만 반면 이로 인해 당원의 선택권이 심각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제도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이해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뚜렷한 대선후보감이 부상하지 않고 있는데다가 바닥까지 추락한 지지율을 놓고 볼 때 내년 대선 승리가 무망한 상황에서 일부에 그치고 있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행사를 국민 전체의 행사로 호도하여 대선 국면을 전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경우 당내 기반이 취약한 인사들이 당외 세력과 연계하여 대선후보가 되거나 당내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정략적 발상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이해가 깔려있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오픈 프라이머리는 제도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특정 정당의 예비선거에 참가한 사람이 정작 본 선거에서는 다른 당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특정 정당의 당원이 아니거나 또는 그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일반인이 특정 정당의 예비선거에 참여하여 약체후보에게 투표를 함으로써 유력한 대선후보를 탈락시키고 경쟁력이 없는 후보가 선출되도록 조작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또한 이를 법으로 규정하는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어 위헌(違憲)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1996년에 도입했던 유권자가 여러 정당의 예비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블랭킷 프라이머리(Blanket Primary)가 2000년 연방 대법원에 의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제도로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은 좋은 사례이다.

    둘째 오픈 프라이머리가 정당제도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바로 정당정치다. 정당은 이념과 정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결사체이고 정당은 그들이 내세운 후보를 통해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다. 따라서 정당에서 자신의 이념, 정책과는 무관한 사람이 후보 결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이념, 정책과는 무관한 사람을 후보로 선출한다는 것은 정당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또한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를 기반으로 한다. 정당은 유권자에게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제시하여 유권자로부터 선택을 받고, 그 선택에 근거하여 자신이 제시한 이념과 정책을 시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 유권자로부터 재선택을 받는 것이 바로 책임정치이다. 그런데 정당이 자신의 이념과 정책보다는 일시적인 인기와 조작에 의해 권력을 획득하려 한다면 어떻게 책임정치를 기대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정치의 피해는 2002년 노무현씨와 정몽준씨가 정당정치의 기본을 무시하고 여론조사를 통해 대선후보를 단일화한 노무현 정부의 탄생 과정과 국민의 바램은 안중에도 없고 무책임과 독선으로 일관하는 노무현 정부의 정치 행태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은 "기득권을 행사하지 않고 국민의 마음에 드는 후보를 공천할 것"이라는 무책임의 극치이자 현란한 수사에 불과한 말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한나라당이 부하뇌동하고 있다는 점은 책임 있는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정당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다. 한나라당에는 이미 오랜 연구와 검토를 거쳐 합의에 의해 결정된 경선 룰이 있다. 이러한 경선 룰을 시행해 보지도 않고 특정 목적이나 특정인을 위해 고치자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특정인을 위해 제도를 고치는 것도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무시하는 반민주적 행위다. 이는 곧 국민에 대한 배신 행위이자 열린우리당의 정략적 발상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당원의 합의로 결정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경선 룰에 따라 대선후보를 선출하면 된다.

    오히려 한나라당에게 더욱 시급한 일은 강재섭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예산심의와 국정감사를 주도하여 정기국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더욱 확보하고 집권 기반을 착실히 다져 나가는 것이다. 지금 국가는 노무현 정부의 방만하고도 어설픈 국정운영으로 파탄지경에 처해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자신에게 부여된 본연의 임무와 국민의 기대를 져버리고 선거 때마다 새로운 제도를 들먹이면서 국민을 현혹시키는 열린우리당을 쫓아 우왕좌왕하고 있다면 자신의 존재가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한나라당도 기간당원제니 오픈 프라이머리니 하면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는 열린우리당을 쫓아 헌법을 무시하는 '반역 정당'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나라당의 분열을 노리는 열린우리당의 노림수에 걸려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불임 정당'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이는 국민이 바라는 한나라당의 모습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정신차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