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9월 12일 독일 방문 때 이슬람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발언을 하여 이슬람권이 분노하고 있다. 중동의 일부 정치 세력들은 ‘이슬람을 적으로 본 십자군과 같은 마음 상태’,‘증오와 불만으로 가득 찬 발언’,라며 교황이 사과할 때까지 ‘불사항전’이나 ‘외교단절’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교황은 “예언자 마호메드가 새롭게 제시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 달라. 그러면 신념을 칼로써 전파하라는 마호메드의 명령과 같이 오직 사악하고 무자비한 것들만 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집트의 최대 야당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의 대표는 “교황은 전체 이슬람 세계의 분노를 초래하고, 이슬람적인 것이라면 뭐든지 적대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주장을 강화시켰다”고 말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는 이슬람을 존중하며, 다만 종교가 촉발하는 폭력을 거부할 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 해명에 대한 유견은 분분한 가운데 카타르의 영향력 있는 무슬림 학자 유스푸 알-카라다위는 “‘금요일을 분노의 날’로 정하자! 교황은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이슬람권의 투쟁을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하의 지역들에서는 교황 발언이 나온 이후 최소한 7곳의 교회가 공격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집권당 하마스측은 "교황의 이번 언급은 책임회피 일뿐 사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이탈리아인 수녀가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도 교황의 발언에 대한 보복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이슬람 단체 히즈부트 타리르가 대변인 명의로 "교황의 발언은 이슬람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교황의 유감 표명은 진실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끝없는 갈등, 그 끝은 절망이다
     
    세계의 평화의 전도자로 인식되어온 전 ‘요한 바오르 2세’ 와는 사뭇 다른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는 ‘베너딕토 16세’.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베네딕토 16세의 발언은 지하드(聖戰) 와 관련해서, 종교 분쟁을 야기 시키려는 미국과 이스라엘 간 음모의 사슬고리를 보여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교황의 발언을 가지고 이른바 ‘음모론’, 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방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은 십자군 전쟁 이후 끝이 없는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는 노벨상 수상작가 살만 루시디의 1988년 저서 <악마의 시>라는 책이 마호메트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작가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었다. 이후 이 책의 출판사인 영국 각지의 펭귄출판사 소유 서점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탈리아의 번역자는 칼에 찔려 중상을 당하고 일본인 번역자는 테러를 당해 사망했다.

    그런가 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십자군 대테러 전쟁’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고 유럽 언론들이 무하마드 풍자만화 등으로 이슬람을 무시 또는 적대시하는 듯 한 발언에 아랍 국가는 시위나 방화·폭력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이지만 종교의 차이는 무섭게 대립된다. 우리 모두는 이 차이를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건마다 공식적인 사과나 화해가 없어 이슬람권과 서방 간의 불신과 대립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자유를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이것과 저것을 통합하여 생각할 때다. 다른 것은 이미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들을 오히려 감사로 받아드릴 것인가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

    인간이 다툼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첫째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 할 때 공존의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이념논쟁’을 끝으로 세계는 평화가 올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종교 갈등이 새로운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다. 

    시각을 바꾸면 나와 다른 모든 것은 새로운 삶을 여는 희망이다. 다름과 차이가 있기에 삶이 있다. 다름을 이용하여 창조하라. 삶 가운데는 창조가 있어야 하며, 그 뒤에는 평화의 공존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