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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음의 미학? 장편의 아름다움도 있다

입력 2006-09-16 14:00 수정 2006-09-16 14:07

인터넷에서 출판까지 확산되는 '짧음의 미학'

우리는 가끔 인터넷을 하다보면, 속칭 말 줄임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십대들이 채팅창에 즐겨 쓰던 말들이 이제는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이 되었다.

예를 들어 즐(가장 즐겨 씀)의 경우는 즐겁게의 줄임말로, ‘즐겜->즐겁게 게임하세요’로 표현 된다. 또한 ‘ㅇㅇ’(응)의 줄임말은 'ㅡ'을 치기 귀찮아서 쓰는 표현이다. 주로 질문을 하면 “A:형 있어요?”, “B:ㅇㅇ”으로 답변을 한다. 이 밖에 ‘귀차니즘’이나 ‘~해써여’라는 표현도 요즘 많이 쓰는 표현이다. 이 같은 ‘말 줄임 현상’은 요즘 확산 되고 있는 짧은 것을 좋아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집중력이 지속되는 시간은 1시간이고, 10분 정도 쉬어야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다만 사람의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초등학생은 40분, 중학생은 45분, 고등학생은 50분 집중 후 쉬어야 한다고 본다. 대학에서는 1시간 30분 정도 수업한 뒤 쉰다. 이른바 '90분 생체 리듬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 중 정작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은 30분이라고 한다. 나머지 시간은 30분을 위한 준비 시간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사람들의 집중력이 짧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는 데 정보 환경이 한몫하고 있다.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면서 집중력이 유지되는 시간이 더 짧아지고, 그것이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이다.

MIT 연구진은 웹서핑에서 인간의 집중력이 유지되는 시간이 9초라고 밝혔다. 9초가 지나면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심리가 발생한다. 이러한 심리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집중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사 구조의 정교화보다는 단순화에 주목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짧음의 미학'이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몽’이나 ‘포도밭 그 사나이’, ‘돌순 씨’ 등의 드라마나, ‘괴물’ 등의 영화의 특징은 바로 극 전개가 ‘빠르다’는 것이다. 즉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영화와 해외 시리즈 등 짧은 시간 동안 집중력 있게 작품을 끌고 가는 장르에 익숙해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작품성 이전에 순간적인 흡인력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EBS '지식채널-e'는 내레이션 없이 영상과 음악, 자막만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그 길이는 대개 5분을 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가 대개 1시간 혹은 2시간짜리임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변신이다. 한국 영화계에는 지금 2분 안에 영화의 흥행이 결정된다는 속설이 돌고 있다. 영화 예고편 2분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이는 물론 제작 편수 증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장편의 미학, 묵과해서는 안 된다

요즘 네티즌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하는 UCC(User Created Contents)의 경우 내용은 5분 이내에 결정 된다고 한다. 수많은 동영상 길이가 결국 5분 안쪽에 있는 것과 같다. '조삼모사' 시리즈는 단 두 칸짜리 만화다. 또한 긴 장편 만화보다 호흡이 짧은 1~2페이지 만화가 인기다. 패러디 포스터는 한 장에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담는다. 포토다큐의 인기도 이러한 짧음의 묘미 덕분이다.

출판계에서도 300~400쪽의 책 대신 100~200쪽 내외의 책이 주목을 받는다. 수많은 정보를 요약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책세선 문고와 프리칭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리더십이나 경영 서적, 인간관계 분야에서 간단한 우화에 빗댄 인생·경영 철학이 각광 받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 베르베르의 <나무>, 프리칭 아카데미의 <기독 지식 총서> 등도 짧음의 묘미로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들이다. 프리칭 아카데미의 임태현 소장은 “요즘 사람들은 짧고 심플한 내용의 책을 선호하고 이유는 바쁜 세상에서 보다 빠른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이며, 기독교 문화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요즘 대학가에서는 ‘호흡이 긴 책’은 더 이상 호응이 없다고 한다. 예전처럼 장편소설을 탐독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고 한다.

아침에 무료로 배포되는 일간 신문의 원칙은 독자가 단숨에 읽을 수 있도록 내용을 단순하게 요약하는 것이다. 예전에 음반에는 필요가 있든 없든 10여 곡이 함께 있어야 그럴 듯했다. 하지만 이제는 1~2곡에 불과한 싱글음반이 발매된다. '거북이'의 디지털 싱글 '비행기'는 2주일 동안 멜론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CCM계도 아티스트들의 디지털 싱글 앨범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명의 발달은 시간과 전쟁을 벌이게 만들었다. 현대인은 짬짬이 조각난 시간 속에서 그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빈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차안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른바 '트랜슈머'(Transumer, trans+consumer, 이동하면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보는 넘쳐나고 읽어야 하는 책은 너무나 많다. 할 일도, 해 보고 싶은 일도 많다. 이 때문에 문화 콘텐츠도 점점 더 강도 높게 시간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장편소설이나 영화,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결코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 서사의 힘은 여전히 문화의 힘이다. 짧음의 미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긴 것의 미학도 있다. 깊은 사색과 오랜 경험은 단순하게 짧게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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