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 4월 17일 터키 방문 도중 "(문제는)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라는 발언을 하자 다음날 오전 외교부 공보 담당자가 "외교부에는 친미파가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는 기사가 보도되어(2005. 4. 19, 조선일보) 실소를 자아내게 한 적이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 정상적인 외교가 존재하고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우리 외교가 이 지경이 된 상황에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9월 1일 관훈클럽 토론회 발언은 신선한 자극이 아닐 수 없다. 반기문 장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한미간에는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인식 차이(perception gap)가 있다"면서 "오는 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기문 장관의 이와 같은 발언은 하루 전인 8월 31일 노대통령이 KBS와의 특별회견에서 "한미관계가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내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보니까 만날 때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데 이어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반기문 장관의 발언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필요에 의해 정부 내에서 의견조율을 거친 후 나온 발언인지 아니면 개인의 소신을 밝힌 발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동안 한미관계에서 심각한 이견과 갈등이 누적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을 반복해온 노대통령이나 이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일사불란한 복창(復唱) 외에는 공개적으로 어떠한 이견도 제시되지 않았던 터라 그 의미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미관계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의 좌파적 해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조차 "한미동맹은 1950년대 이래 최악의 상태"라고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현재 "워싱턴에는 노대통령이 급진주의자이며 동맹 악화의 모든 책임이 노대통령에게 있다는 견해가 민주, 공화 할 것 없이 퍼져 있다"고 미국 분위기를 소개하고 있다.(2006. 8. 31, 조선일보) 이것이 한미관계의 현주소인 것이다.

    이처럼 최악의 상태에 와 있는 한미관계는 최근 전시작전통제권(이라 '작통권') 환수 문제를 놓고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최근 북한의 군사 위협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작통권 환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전에 비해 확연히 다른 것처럼 미국이 점차 격한 감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작통권 이양 방침을 통보하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위협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었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상원에서 "북한군은 한국에 대한 중대하고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던 것이 지난 3월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에 작통권 이양 방침을 통보한 7월 이후인 8월 27일에는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직접 "북한은 한국에 대해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확연히 다른 발언을 한 것이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발언에 대해 피터 벡 국제위기그룹(ICG) 동북아 사무소장은 "미군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명백한 신호"라고 진단했다.(2006. 9. 1, 연합뉴스) 조나단 폴락 미국 해전(海戰)대학 교수도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재배치를 예고해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AP 통신 또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과 연관시켜 해석했다.(2006. 8. 30, 조선일보)

    이처럼 불과 몇 달 사이에 미국의 입장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된 원인은 바로 노대통령의 좌파적 정치 실험에 대한 불신에 있다는 것이 대다수 정상적인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동안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여 한국과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해 왔던 미국은 노무현 정부가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정책을 지속함에 따라 더 이상 한국과의 동맹의무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감정의 골이 깊어진 한미관계가 양국에게 가져다줄 결과는 심각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보 약화, 국내 갈등, 경제 악화 등과 같은 사활적 문제가 초래될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미국에게도 한미동맹 약화에 따른 전략적 이익의 감소뿐 아니라 한국 대신 일본과 호주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연대 추구는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현재 최악의 상태에 와 있는 한미관계는 노력에 따라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미관계의 회복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바로 미국이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의 통일에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미국에게 확신시키는 일이다.

    그 핵심은 한미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노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무책임한 상황 인식에서 벗어나 한미 양국이 공유해온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 그동안 누적되어온 이견과 갈등을 치유하기 나가는 일이다. 이 점에서 반기문 장관의 9월 1일 발언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솔직히 지적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격언도 있다. 마지막 노력과 역할에 따라 양국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한미관계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반미인사를 제외하고 소위 친미파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미국 전문가, 친미우호 인사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