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대통령의 본업은 나라와 국민 지키는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최고 임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대통령 본업은 국가 보위라는 말이다. 헌법에 그리 나와 있다. 헌법 66조 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존·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돼 있다. 이 정권이 좋아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는 그 다음 항에 들어 있다. 대통령 취임 선서 내용도 그 순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로 돼 있다.

    대통령의 권력 행사는 대부분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예외가 대통령의 권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권력인 긴급처분권·긴급명령권·계엄선포권 행사다. 긴급처분·명령권은 대통령의 명령이 곧장 법의 효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만이 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민주정치의 입법 원리와 충돌하는 대통령 권력이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를 통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정지시키거나 법원의 권한을 제한할 수도 있다. 이런 대통령의 비상권력을 국회의 사전 동의가 아니라 사후 승인만 얻는 조건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때론 국가 보위를 민주정치의 원리보다 우선해야 할 상황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내우·외환·천재·지변에서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긴급처분권),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긴급명령권),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서”(계엄선포권)는 다른 것 따지지 말고 대통령에게 국가를 지킬 권한부터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의 국가 보위 업무는 지중하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예외적 특권까지 부여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마디로 안에서 나라를 뒤엎거나 바깥 세력을 불러들여 나라를 허물지 않는 한 웬만한 잘못은 다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반역죄·수뢰죄 또는 그 밖의 중대범죄로 탄핵받고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면직된다”는 미국 헌법보다 대통령의 특권 범위가 훨씬 넓은 것이다.

    이런 대통령이 자신의 본업인 국가 보위 업무에 대해 태만히 하거나 잘못 판단하거나 그릇된 결정을 내릴 경우, 대통령은 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다.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대통령에게 예외적 권력과 특권까지 넘겨 준 국민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200년 역사를 통해 산전수전을 겪은 현대 헌법이라지만 이 부근에 구멍이 나있다. 우리 헌법 65조는 “국회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할 때에는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 조항이 대통령의 중대한 정치적·정책적 판단 착오나 결정 실수로 나라의 안보가 허물어져 국민이 전쟁으로 떠밀려가는 것을 막아줄 수 있을까. 물론 대통령의 헌법상 최중요 책무는 국가 보위다. 그러나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이 실질적으론 확실히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형식상으론 합법 절차를 밟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대목에 이르면 헌법도 눈치보고 망설인다. 헌법의 함정이다. 국민은 헌법 안에서 버팀목을 찾지 못하면 헌법 밖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국민이 헌법 밖에서 기댈 곳을 찾아 나서면, 그것이 바로 국가의 위기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게 되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재의 헌법재판소가 이런 고민을 국민과 함께 나누리라고는 믿기 힘들다.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냐 공동행사냐 하는 문제는 사실은 간단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이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한민국 땅에서 몇 달간 전쟁을 벌이더라도 마지막에 가서 격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냐, 아니면 그런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하느냐의 선택 문제다. 수십 만 명 또는 수백 만 명 국민의 생명이 걸리고 나라가 보존되느냐 폐허가 되느냐가 갈리는 문제다. 그 절박함이 대통령의 불법적 선거개입이나 위헌적 수도 이전 결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사활 문제를 “우리 비행기 성능도 훨씬 좋아졌고” “대한민국 국력 수준이 작전통제를 남에게 맡겨놓을 수준이 아니다”라고 우기며 혼자 밀고 나가고 있다. 그 대통령 어깨에는 10%대의 국민지지가 얹혀 있다. 대통령이 고민하지 않으면 국민이 헌법 안에서 때론 헌법 밖에서 결심해야 할 날이 가까워 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