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영호 논설위원이 쓴 시론 <노무현 정권 ‘역(逆)흥행코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고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영화 ‘괴물’이 스크린에 그대로 박제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었다. 1000만명 관객 동원의 흥행코드를 찾다보니 그 괴물의 존재가 현재 정치적 흥행코드에 휘말려 흔들리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늘 보아오던 한강이 그럴 듯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벌써부터 이 영화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다고 하니 아름다운 한강이 외국 관객에게도 잘 전달되기를 기대해본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한강의 기적’으로 남아 있을 한강이 입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흉측한 괴물의 근거지라니 왠지 찜찜하다. 하기야 현실을 돌아보면 한강에 과거의 기적 대신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표현도 그리 어색한 것만은 아니다.

    영화나 현실 정치나 흥행코드는 비슷하다. 관객 동원을 위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기존 체제 인정보다는 거부, 통합보다는 분열, 이성보다는 감성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괴물’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쉬리’ ‘왕의 남자’ ‘웰컴 투 동막골’ 등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반미코드’ 등을 통해 대체로 미국과 대한민국을 적당히 부정하고, 북한에 우호적이며, 기존의 체제와 관습을 과감히 뒤집어엎어 대리만족을 주는 양념식 코드를 지니고 있다.

    현 정권의 흥행코드 역시 그 주변을 맴돈다. 이념·과거사 논쟁, 양극화 해소, 편가르기 등 극적 효과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포퓰리즘을 앞세웠다. 한때의 흥행 성공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그 결과가 영화와는 너무나 판이하다. 최악의 현 정권 지지율을 불러왔을 뿐이다.

    현 정권의 흥행코드는 효력을 잃은 지 오래다. 오히려 그 후유증으로 과거 경험하지 못한 ‘역(逆) 흥행코드’만이 미래의 불안감과 함께 ‘괴물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역흥행코드’의 첫번째가 국정은 물론 만사를 그르치며 사사건건 시비의 대상이 돼온 인사문제다. 그들만의 ‘코드완장·계급장 놀음’이 그것이다. 최근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경질이야말로 이런 놀음의 폐해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권력 앞에서 눈치가 가장 빠른 공무원이 고개를 바짝 들고 대드는 인사라면 이미 시비의 단계를 넘어선 셈이다.

    현 정권 실세들의 경력이래야 사실상 과거 민주화투쟁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이런 경력조차 없는, ‘급’이 되지 않는 인물을 낙하산으로 밀어붙이다보니 파문이 뒤따른다. 인물 발탁이 본질인 인사에서 유독 ‘저 사람만은 안된다’는 부정적 어법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현 정권 들어 장·차관 등 고위직 증설에 이어 대대적인 경찰·소방공무원 승진잔치가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야당이 대부분인 시·도지사조차 계급장을 장관급으로 올려달라고 하는 실정이다.

    두번째는 국정을 희화화하는, ‘싸가지’없는 말과 글이다. 유 전 차관의 경질 사태에도 역시 ‘배 째드리죠’라는 말의 진원지를 찾느라 공방을 벌였음은 물론이다. 국가의 격과 국민의 자존심을 흔드는 이런 것도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 세번째는 국민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주는 대북문제와 한·미외교문제다. 북한 미사일 도발사태나 한·미동맹의 균열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괴물’역임에도 현 정권은 그 역할을 분담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전국공무원노조까지 연례 을지포커스렌즈연습을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그 폐지를 촉구, 국가 정체성은 물론 국민의 균형감각조차 흔들고 있다.

    갈수록 궁핍해지는 민생은 그 네번째 코드다. ‘공정한 분배’ ‘양극화 해소’를 제1의 기치로 내건 현 정권은 유독 가난 주변을 맴도는 찬바람의 속성에 희망 대신 살을 에는 바람을 더하고 있다.

    5·31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역대 정권에서는 볼 수 없는 야당 싹쓸이라는 초유의 경험을 불러왔다. 결국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또 다른 부담이라는 점에서 그 다섯번째 코드로 꼽힌다.

    여하튼 외국인들이 영화 ‘괴물’을 보면서 과거 ‘한강의 기적’을 떠올리는 대신 그 기적을 갉아먹는 현 정권의 ‘역흥행코드’를 눈치챌까 하는 걱정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