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에 이 신문 김종혁 정책사회데스크가 쓴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본 건 2001년 봄이었다. 당시 그는 새천년민주당 고문이었다.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의 오전 당직자 회의에 가보니 멀찌감치 노 고문이 혼자 앉아 있었다. 소문대로 그는 외톨이였고 외로워 보였다. 건방진 얘기지만 측은한 느낌이 있었고 반갑기도 했다. 그는 5공 청문회의 스타였고 보기 드물게 뚝심 있는 정치인 아닌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자 노 고문은 대뜸 "난 중앙일보엔 감정 없어요. 하지만 C일보는 용서 못 해요"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그는 몇 년 전 자신과 C일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장황하게 언급했다. 이미 다 알려진 내용이었다. 회의실에 있던 다른 기자 몇 명이 웬일인가 싶어 다가왔다가는 '피식' 웃으며 멀어져 갔다. '다른 할 말도 많을 텐데 자기가 피해를 봤다는 얘기를 뭐 이렇게까지 해대나' 하는 생각에 적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건 하나의 전술이었던 것 같다. 그는 어느 순간 보수 언론과 싸우는 스타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부패하고 무책임한 보수, 패권적이던 신문에 실망한 많은 사람은 '진보 대표 주자 노무현'의 뒤에 가서 섰다. 열광하는 '노사모'의 함성 속에서 정치인 노무현의 약점과 결점은 묻혀 버렸다.

    2003년 5월, 국가 최고지도자가 된 노 대통령을 백악관 영빈관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미국을 방문한 노 대통령이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기자회견장이었다. 노 대통령은 달라져 있었다. 하루 전날 뉴욕에선 "6.25 때 미국 아니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 한 특파원이 "미국에 너무 저자세 아니냐"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친구를 설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답변했다. 대통령 후보 때 "반미 좀 하면 어때" 하던 태도와는 너무나 달랐다.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더니 저렇게 참아내는구나" 하는 생각에 존경심도 일었다.

    하지만 200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온 노 대통령은 또 달라져 있었다. 이번엔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 수단이라는 점에서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북한이 핵 좀 가지면 어때"였다. 당시 워싱턴 한국 대사관은 갑자기 터져나온 노 대통령의 발언 파문을 진화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대체 이건 또 뭔가." 나는 다시 헷갈렸다.

    2006년 8월, 집권 3년6개월이 지났지만 노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어떤 미래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지지도가 20%대인 걸 보면 국민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때 청와대에 근무했던 측근 참모들과 열린우리당도 노 대통령을 공격하는 걸 보면 그들 역시 잘 모르지 않나 싶다. 가끔은 "혹시 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장래에 대한 청사진 자체가 아예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스러운 생각도 떠오른다.

    노무현 정부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권위를 무너뜨리고, 과거사를 파헤치는 데는 분명 성공했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이 잘 먹고 잘살게 하고, 경쟁력 있는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은 이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초 북한이 동해상에 미사일을 쏴 댔을 때 침묵했다. 국민은 불안했고 국군 통수권자로부터 뭔가를 듣고 싶었지만 대통령은 입을 다물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란 말이냐"며 거꾸로 언론을 질타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노 대통령은 이번엔 연합뉴스와 특별회견까지 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논쟁의 전면으로 끌고 왔다. 나라 전체가 이 문제로 '난리'를 겪고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동안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던 이슈들은 순식간에 무대 뒤로 사라졌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물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갈등도 숨어 버렸다.

    아무래도 노 대통령은 천생 승부사 같다. 하지만 잠깐의 승리에 불과하다는 느낌도 든다. 노 대통령 집권 3년반 만에 '진보의 집권능력'에 고개를 흔드는 국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여전히 노 대통령의 마음을 모르겠다.